▲아들의 울고, 웃는 두 장의 흑백 사진지금은 어른이 되버린, 어린 시절의 아들 모습
한난옥
아이들이 비어있는 두 개의 방으로 예전 모습을 띤 채 다시는 돌아오는 일은 없겠지.
펭귄 사진이 겉표지로 되어있던 책 <남극의 눈물>을 우연히 도서관에서 집어 들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던 기억이 아이들의 텅 비어있는 방과 겹친다. 펭귄의 새끼 사랑은 끝판왕이다. 새끼를 낳고 키우는 과정은 사람의 그것과 너무나 많이 닮아있다. 수많은 펭귄의 무리 속에서도 자기 새끼를 정확하게 찾아내어 새끼의 입에 먹이를 넣어주며 새 생명을 지키는 과정은 감동과 눈물이다.
그러나 새끼들이 혼자 먹이를 구해서 살아갈 수 있다고 판단하는 순간, 부모 펭귄들은 앞만 바라보며 떠난다. 엄마 아빠를 마냥 기다리던 새끼들은 지친 나머지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먹이를 구하러 남극의 험한 바다로 새끼들은 자기만의 여행을 시작한다. 영원한 이별이다.
중요한 것은 여기부터다. 코알라와 펭귄으로부터 배운 귀한 교훈 하나가 있다. 탯줄이 끊어지는 순간부터 엄마는 아이와 지혜롭게 헤어짐을 준비해야 한다. 아이가 성장하는 속도에 맞추어서 늘어트린 관계의 끈과 관계의 각도를 섬세하게, 그러나 반드시 재조정해 나가야 한다.
인간은 코알라와 펭귄하고는 다르니 예고 없는 이별은 말고,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엄마의 가슴에서 밀어내기를 해야 한다. 먹이고 입히는 일차원적 관계에서 정신적인 관계로의 전환을 꾀해야 한다.
'관계 위치 에너지의 변화 = 마음 에너지의 변화'라는 등식이 성립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예컨대 가슴으로 안아서 키우던 아기가 커서 또래 집단을 형성하는 유치원생이 되면 그만큼 거리가 형성되고, 그 거리의 폭은 점점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넓어지게 되어있다.
거리가 달라지면, 마음도 달라진다
어른이 다 된 자식과 대화의 주된 소재가 먹는 것, 입는 것을 중심으로 여전히 이어진다면 자식에겐 쓸데없는 간섭(소유, 집착)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터. 자식과 관계는 거기서 한걸음도 더 나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 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중략)... 어머니는 고등어를 절여 놓고 주무시는구나. 나는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구일 먹을 수 있네'
이런 노랫말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언제 들어도 뭉클하다. 딱 거기까지다. 50~60대 이상의 사람들 정서이지 않을까 싶다. 더 이상 우리들 자식에게는 이런 부채감이 통하기 어렵다.
이제 부모가 된 우리는 부모의 삶을 신바람 나게 살자. 자식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삶을 디자인하고 자신들의 삶과 철학에 맞추어 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쿨하게 마음에서 밀어내자. 밀어낸 빈자리에 그들의 정신을 공유해보자. 결코 어렵고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읽었던 책 한 줄,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스크린도어에 적힌 시를 읽고 마음에 남아 있는 여운, 운전하다 바라본 가을 풍경, 아들의 연구과제, 딸의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에서부터 인생의 마지막 섹션으로 막 접어드는 60세 이후 나의 계획, 늙어감의 느낌에 이르기까지 나눌 수 있는 대화거리는 무궁무진하다.
건강한 수다가 마음의 빈자리를 메우면 흘러들어와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더 기름지게 만들어 준다. 둥지를 떠났던 아이들이 자기 새끼들을 데리고 떠나왔던 둥지를 가끔은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그렇게 하자.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현재 교육현장에서 일하고 있음
좀 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