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5월 24일자 <동아일보>. 여상규 자유한국당 의원은 당시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 변호를 맡아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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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무실은 부림빌딩 501호라고 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어머니의 병원비 때문에 법복을 벗었다고 알려졌다. 1997년 5월 <경향신문>은 "월 2백만원의 치료비를 대느라 월급을 몽땅 쏟아 부었던 그는 점심 값을 아끼고자 도시락을 갖고 다녀 '도시락 판사'로 불리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변호사 개업 후 열흘만에 숨졌다고 한다.
이런 사연까지 신문을 통해 알려지게 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그의 사무실 주변에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 때 이 기사의 제목 또한 '얼굴 내민 현철씨 변호사"였다. 그는 현직 대통령 아들을 대표하는 변호사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알선수재죄 등 혐의로 구속된 후에도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던 김씨와 여 변호사가 1997년 5월 23일, 서울구치소에서 만났다.
당시 여상규 변호사는 "이틀 전 김씨 부인이 직접 찾아와 도움을 요청해 승낙했다"라며 "전부터 김씨와 알고 지내지는 않았다"라고 밝혔다. 또 한편으로는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김현철을 변호할 생각이 없었지만 변호사로서 기소장만 봐도 명백히 무죄라 확신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그는 세상의 중심에 섰다. 그리고, 한동안 잊혀졌던 그 이름은 2005년 또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
2005년 8월 노회찬 의원이 이른바 '떡값 검사' 실명을 공개했다. 안기부 X파일 녹취록에서 "지검장이 떡값 리스트에 포함돼 있으니까, 연말에나 주라"고 홍석현 전 <중앙일보> 사장이 지목한 상대가 안강민 당시 서울지검장이라고 했다. 그러자 안 전 지검장은 노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1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냈다. 자신의 변호사로 '여상규'를 지목했다. .
"노회찬 의원이 근거로 주장하는 테이프나 녹취록 어디에도 안강민 변호사가 삼성에서 떡값을 받았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당시 여상규 변호사)
그리고 두 사람의 이름은 2008년 3월 이렇게 다시 등장했다. "한나라당 강도 높은 공천 물갈이 단행" "총선에 출마할 11차 공천 내정자 21명 추가 발표" "안강민 위원장은..." "다음은 공천 후보 내정자 명단, 경남(3명) = 조해진(밀양·창녕), 허범도(양산), 여상규(남해·하동)". 2008년 1월, 한나라당의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장은 안강민 전 서울지검장이었다.
왜 그렇게 <그것이 알고싶다>에 화를 냈을까... 그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