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터슨>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주)
사무실 창 밖을 넌지시 바라본다. 익숙한 풍경이 곧 선명하게 들어온다. 4차선 도로 위를 무심히 달리는 자동차 중 버스가 보인다.
나는 오늘 아침에도 사무실 출근을 위해 기다란 파란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재빨리 내리기 위해 뒷문에 가까이 앉은 내 자리에서 익숙한 뒤통수가 보였다. 맨 앞자리에 앉아 운전대를 잡은 버스운전 노동자다. 빨노초 신호에 맞춰 적절한 때 브레이크를 밟고 다시 속도를 내는 그 덕분에 오늘도 무사히 사무실에 도착했다.
2017년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패터슨>이 불현듯 떠올랐다. '패터슨'은 미국 뉴저지주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의 이야기다.
스크린 속 패터슨의 삶은 단조롭고, 평온하다. 매일 아침 6시10분과 15분 사이에 기상한다. 침대에서 일으킨 몸을 끌고나와 식탁 의자에 앉아 시리얼을 먹는다.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정해진 출근 시간에 맞춰 직장까지 걸어가 PATERSON(패터슨)이라 쓰여있는, 그가 담당하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자기가 사는 도시의 이름과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설정도 독특하지만, 정작 내 눈길을 끈 건 그가 입고 있는 푸른색의 유니폼이다. 패터슨은 버스 운전기사다. 그런데 그에게는 운전보다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행위가 있다. 시 쓰기다.
꽤 단조롭고 단순 반복처럼 보이는 패터슨의 일상에서 꿈틀대며 조금씩 나아가는 것은 그가 비밀수첩에 적는 시다. 주변의 모든 것이 그에게 영감을 준다. 출근해 동료에게 듣는 비슷한 푸념, 운전석 뒤로 오가는 버스 승객들의 다양한 이야기, 반려견 마빈을 데리고 산책하러 나갔다 항상 들르는 단골 바(bar)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 패터슨이 가장 사랑하는 동반자 아내 로라의 이야기 등 무궁무진하다.
이렇듯 패터슨의 반복되는 매일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패터슨을 오로지 패터슨으로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힘은 바로 매일 써내려가는 시이자, 그 시를 쓰는 시간이다. 패터슨은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라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버스 운전 노동자인 것이다.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 순간 '한국의 버스 운전 노동자들도 패터슨처럼 시를 쓸 수 있을까?'라는 다소 엉뚱하지만, 마음이 묵직해지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