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퀴어문화축제 깃발
인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그 질문이 다시 선명히 떠오른 것은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 현장에서였다. 많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듯 혐오 단체는 축제가 진행될 광장을 점거하고 부스조차 설치할 수 없게 막았다. 심지어 경찰의 저지선을 무너뜨리고 들어와 축제 참가자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이들이 행한 폭력은 셀 수가 없다. 참가자들을 향한 혐오 발언과 모욕은 기본이었고 물리적 폭력까지 행사한 경우도 많았다. 퍼레이드 차량을 훼손하여 아예 달릴 수도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도로를 점거하고 행진을 방해했으며 참가자들이 들고 있던 깃발들을 빼앗아 부러뜨리거나 되찾지도 못하게 했다.
저지선이 뚫리고 혐오 집단이 광장에 난입했을 때, 나는 짐을 지키려 앉아 있다 인파를 그대로 맞았다. 깃대는 부러지고 물품을 담은 봉지가 발에 채여 허망하게 날아갔다. 그나마 남은 짐을 지키겠다고 찢어진 박스를 부여잡고 비틀비틀 걸어가는데 누가 나를 뒤에서 붙잡았다. 그리고 나에게 '하나님 아버지, 부디 돌아오세요'라고 소리 질렀다. 화가 났다. 우리가 존재할 곳을 지우고서 도대체 어디로 돌아가라는 말인가.
하지만 가장 뼈저리고 굴욕적인 순간은 행진 때였다. 혐오 집단은 우리가 깃발과 피켓을 내리고 걷는 것을 조건으로 길을 터주겠다고 요구했다. 이미 시간은 늦었고 혐오 집단은 끝까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그런 식으로 우리는 비좁은 인도를 걸을 수밖에 없었다.
퀴어문화축제는 무엇보다 소외되고 비가시화된 성적소수자들이 겨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축복할 수 있는 자리다. 그런 공간에서 그들은 '너희가 누구인지 가려라'라고 강제한 셈이다. 무지개가 새겨진 물품을 조금만 높게 들어도 혐오 집단들은 내리라고 소리를 질렀다. 심지어 경찰조차 충돌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우리에게 같은 요구를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행진의 중간부터는 질서를 유지할 경찰조차 없었다. 우리는 양옆으로 늘어선 혐오 집단들에게 둘러싸여 길을 걸었다.
우리는 실패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혐오 발언을 들었는지 굳이 옮기지는 않겠다. 혐오 집단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예의조차 갖추지 않은 이들이었다. 그들은 반말로 조롱하거나 우리에게 윽박질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늘상 듣던 말이었기에 상처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억울함과 모멸감이 덮쳐왔다. 행진이 더 이상 지연되고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혐오 집단의 폭력에 일절 대응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다수의 혐오 집단이 둘러싼 상황이 주는 중압감 속에서 그들의 언어폭력을 맞받아치기는 불가능했다. 나는 조용히 침묵하고 걸었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게 화가 났다. 왜 나는 무력했을까. 항의조차 하지 않았을까. 내가 들은 그 끔찍한 말들을 그대로 돌려주지 않았을까.
많은 언론이 인천퀴어문화축제에 주목했다. 하지만 대부분 그들은 일방적인 '감금'(혐오 단체가 축제 참가자들을 둘러싸고 길을 막은 탓에 우리는 식사는커녕 화장실도 갈 수 없었다)과 '폭력'을 '충돌'이라고 이야기했다. 가장 화가 나는 표현은 '축제가 무산되었다'는 것이었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우리가 부스를 열고 발언을 이었으며 행진까지 진행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 거기에 단어가 주는 느낌도 불쾌했다. 무산? 우리가 실패했다는 뜻일까?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특히 행진의 순간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