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출입문 위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오른손에 천칭저울을 글고 왼손에는 법전을 안고 있다.
권우성
전두환과 하나회는 곤봉과 소총과 탱크만으로 광주를 짓밟은 게 아니다. 공중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며 헬기 사격도 가했다. 공군 폭격기를 동원하려고까지 했다. 이런 하나회를 자유한국당은 우리법연구회나 국제인권법연구회와 등치시켰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단순히 사조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법부 하나회'로 불려야 한다면, 이 세상에는 그런 하나회가 한둘이 아니다. 학교 안에도 많고, 회사 안에도 많고, 종교계 안에도 많다. 그런 식으로 하면 세상의 거의 모든 모임이 앞으로는 '○○○ 하나회'로 불려야 한다. 자유한국당 내에도 '○○○ 하나회'로 불릴 만한 게 한둘이 아닐 것이다.
우리법연구회는
우리법연구회는 1987년 6월항쟁 후에 생겨난 진보적 판사들의 학술 모임이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이명박 정권 때인 2011년 생겼다. 군대와 달리 법원에는 이런 모임이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
판사의 업무는 학자의 연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판례도 공부하고 학계 연구동향도 파악해야 한다. 학계의 통설이나 다수설을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지만, 어떤 학설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둬야 한다.
그런데 담당해야 할 사건도 많고, 읽어야 할 소송서류도 쌓여 있는 상황에서 별도로 공부를 하자면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과 합력하는 게 유리하다. 최신 판례와 학설을 좀 더 수월하게 파악하자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스터디 모임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군대 사조직과 달리 법원 학술모임은 권장돼도 무방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법연구회 같은 법원 내 모임의 주 목적이 이념 활동이 아니라 학술 연구라는 점은 2003년 4월 이 연구회를 크게 보도한 <신동아> 기사 '강금실·박범계... 강골 판사의 산실'에서도 인정됐다. 제목만 보면 우리법연구회가 강골 판사들의 비밀 조직쯤 되는 것 같지만, 기사 내용을 들여다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
"법학도서 읽기 모임을 갖고 있던 강금실 판사 등 4명의 소장 판사는 수차례의 독서모임을 연 뒤 모임을 전문화하고 확대할 필요성을 느낀다. (중략) 세미나라곤 하지만, 모임 장소가 마땅찮아 서로의 집을 돌아가며 법학 논문을 읽고 토론하는 형식이었다."
"창립 이후 우리법연구회는 매월 한 차례 월례 세미나를 갖고 헌법·노동법·경제법 이론을 개관하는 학회 모임을 이어간다. 회원들은 각자 자신이 발제한 주제의 논문을 발표하는 한편, 법원 내부에서 일어나는 시사적 문제들을 요약 정리해 토론해왔다."
아무리 학술 모임이라지만, 진보 성향들만 모였다면 위험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공부는 마음 맞는 사람끼리 해야 한다. 노동법이나 인권법 혹은 여성 문제를 토론하는 스터디 모임에 보수 성향이 강한 법조인이 참여한다면, 모임이 제대로 굴러갈 리 없기 때문이다. 스터디 모임에서 뭔가 배우기보다는 스트레스만 쌓고 돌아올 확률이 높다.
양승태 대법원장도 알고 있었다
이런 학술 모임을 박정희·전두환의 하나회와 비교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점은 양승태 대법원장 쪽도 잘 알고 있었다. 양승태 측도 이런 모임들의 실체를 조사했다. 그 조사의 결과가 2016년 3월 15일 작성한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검토'에 적혀 있다. 이에 따르면,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 대부분은 보수 성향 인물들이다. 진보적 성향들이 만들었지만, 지금은 보수 성향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다수 일반 회원은 순수한 학문적 관심과 국제인권에 대한 관심에 따라 가입한 회원들임. 이념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띠고 있고, 특히 36기 이하의 법관들은 이념적 편향성이 적고 국제법 등에 대한 관심에 따라 연구회에 가입한 법관들이 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