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3월 3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공영방송을 만들겠다며 KBS “유신이념의 구현”이라는 역할을 부여했다.
뉴스타파
기득권자의 줄임 말은 '기자'였다1975년 <동아일보> 기자들이 유신 독재에 맞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꾸렸다. 박정희 정권은 <동아>에 부당한 공권력을 행사했고, <동아>는 언론인 113명을 대량 해직했다. 1980년에는 전두환 신군부세력은 '사이비 기자들'이 많다며 언론통폐합을 실시했다.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으로 우리 경제는 10%대 고성장을 기록해 광고홍보수요가 급증했는데 언론사가 한정되다 보니 기득권 언론이 생겨났다. 그때 당시 <조선일보> 기자는 보너스로 연봉의 1000%를, <부산일보> 기자는 700%를 받았다.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언론 특혜인 '기자아파트'는 1987년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지어졌다. 최근 재건축을 승인받은 아파트는 완공 당시 31평형을 기준으로 3400만 원에 거래됐지만 지금은 시세로 15억 원대에 이른다.
2014년 <기자협회보>는 50년사 기념 책에 일원동 기자아파트를 '주거복지'로 내세웠다. 이로써 언론기관은 권력과의 상호 협조 아래 독점 재벌화했고, 언론기관 종사자는 체제 옹호의 선전자로 전락하는 대신 물질적 보상을 받게 됐다. 최 팀장은 "지금도 '제도화한' 사이비 기자가 많고, '기레기'는 과장된 말이 아니다"며 "이런 기자가 될 바에는 차라리 기업 홍보팀에 들어가는 게 좋다"라고 꼬집었다.
객관적 저널리즘의 탄생 배경19세기까지 미국 신문은 정파적이었으나 20세기 초 모스부호와 텔레그램의 발명, 대서양 해저케이블 설치로 객관주의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미국 이민자들은 고국 소식을 보다 빠르게 주고받게 됐지만 내용이 길수록 비용이 커졌다.
각 언론사는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메시지 전송비용을 갹출하기 시작했고 이는 AP(Associated Press)의 전신이 된다. 철저히 산업적 논리로 탄생한 객관주의는 '왜'보다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같은 팩트를 중요히 여겼고 이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프로페셔널리즘'으로 발전했다.
기자, 사주, 산업, 이익이 결합해 '객관'이라는 신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객관은 '100%의 보편'이므로 신화일 수밖에 없다. 최 팀장은 인간은 주관적이고 편향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되 팩트로 이야기할 때 보편적으로 설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컴퓨터가 보급돼 과학적 글쓰기가 가능하니 데이터저널리즘과 탐사보도를 활용한다면 독자에게 객관적으로 보이고, 그들을 설득할 수 있으며, 세상을 잘 비출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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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기'는 과장된 말 아냐... 객관 강박은 진실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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