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 좋겠지만 그건 웃고 싶을 때 웃으면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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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나는 회사를 이직해서 새로운 환경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내가 속한 부서는 임원분들이 많은 곳이라 직급 차이도 많이 나고 많은 것이 낯설었다. 몇 번의 모임과 회식 후, 부장님 한 분이 나에게 좀 더 웃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다음 회식에는 얼굴에 쥐가 날 것처럼 웃는 내가 있었다. 또 다른 부장님 한 분은 그렇게 웃고 있는 나를 보고 "너무 영혼이 없는 거 아니니?" 하며 웃으셨다.
열심히 미소 지었는데, 어색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이때의 경험으로 너무 억지로 웃는 것도 좋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안면근육에 쥐가 날 것 같았고 피곤했다. 그 효과도 모르겠고 누구를 위해 이 고생을 해야 하나 의문이 들었다. 회식자리에서는 유독 많이 웃기는 하지만 그건 할 말이 없어서 면피 조로 짓는 표정에 불과하다.
즐거워서 웃기보다 필요해서 웃게 되는 것이다. 웃으면 행복해진다는 건 확인된 바 없는 거짓말이다. 그냥 보기 좋으라고 분위기 좋으라고 웃으라는 건데 즐거워야 웃지, 그냥 웃어서야 속없는 사람같이 보인다.
한 번은 국내에서 가족여행으로 지방의 어느 호텔에 방문했다. 그곳에서 사회 초년생으로 보이는 직원을 만났는데, 서비스직의 업무상 친절 교육을 받고, 배운 것을 실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보였다. 직원이 엄청 어색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힘들게 미소 짓고 있었다. 경련이 일어나기 일보 직전, 우는 표정 비슷한 미소를 보며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안 웃어도 되는데.'
억지로 미소 지었다를 넘어 익숙하지 않은 표정 때문에 힘들어서 얼굴 근육이 떨리는 게 보였다. 웃고 있는 사람 얼굴 보고 안쓰럽다고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외국에서 호텔에 가면 웃는 직원도 있지만 미소의 '미' 자도 없는 직원들도 많은데 무표정이나 화난 표정보다 어려운 미소였다.
웃는 것보다, 외모보다 중요한 건 그 표정을 짓는 당사자가 어떤 상태인가다. 상대방이 편하면 나도 편하다. 웃으면 좋겠지만 그건 웃고 싶을 때 웃으면 되는 거다. 잘 생긴 게 못 생긴 것보다는 좋겠지만 TV 속 연예인에 눈이 익숙해서 그렇지 뭐 그렇게 잘 생긴 사람들이 많을까 싶다. 못 생겨도, 평범해도 자연스러운 게 제일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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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에서 부장님에게 "더 웃으라"는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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