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맏손자인 김종대 리제너레이션 대표(32, 미국 애틀란타)가 최근 제주를 찾아 예멘 난민들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김봉현 편집부국장과 인터뷰 중인 김종대 대표
제주의소리
<아래는 김종대 대표와의 인터뷰 전문>
- 반갑다. 현재 미국 애틀란타에서 생활한다고 들었다. 그곳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소개 부탁한다. "미국 애틀란타에 인근에 클락스턴(Clarkston)이라는 도시가 있다. 여의도 1/3의 면적의 소도시다. 인구도 1만명 정도밖에 안된다. 재미있는 게 여기 인구 중 80%가 난민 출신이다. 이 곳 인구의 30~40%가 외국에서 태어난 난민 1세대고, 2세대들까지 합하면 80% 가량 된다. 저는 여기서 아내와 함께 난민들의 교육지원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 '리제너레이션'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애틀란타는 1960년대에 건설 붐이 일었고 집과 비행장 등 건물을 지을 때 인구를 유치해오는 과정에서 접근성이 좋은 클락스턴에 아파트촌이 형성됐다. 클락스턴에는 1960~70년대에 건설된 아파트가 많다. 공사가 끝나고 노동자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빈 집이 많이 생겼다. 집값이 저렴하니 1980~90년대부터는 미국정부가 난민들을 이쪽으로 보냈다. 처음엔 베트남계 이주민 많이 왔고 다른 국가에서도 하나둘씩 오기 시작하니까 난민정착지역이 됐다. 그 기간 동네가 구성원의 변화도 많이 겪었다.
미국내 가장 다양한 1제곱 평방마일 '클락스턴'클락스턴의 캐치프레이즈가 '미국 내에서 가장 다양한 1제곱평방마일'이다. 40여개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60여개 언어를 쓰면서 매일매일 살아가는 곳이란 의미다. 하나의 거리 한 쪽엔 교회가 있고 맞은 편에는 이슬람 사원이, 그 옆에는 사찰이 있다. 난민들이 많이 정착하는 곳이 되니 자연스레 미국 내 난민 정착 관련 NGO, 선교단체, 비영리단체가 모여들면서 재미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지게 됐다.
분위기가 따뜻하고 누구나 굉장히 편안함을 느낄 수 있고,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다양성도 있고 굉장히 재미있는 도시다. 미디어에서도 취재를 많이 온다. 어떤 기자들은 파내도 파내도 이야기가 많다며 '보물섬 같다'고 말한다. 지금도 이 도시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가 제작 중일 정도로 주목을 많이 받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이 '반 난민, 반 이민' 정책으로 가고 있다. 그럴수록 아무래도 이 도시에는 (트럼프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어서, 이 도시가 많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 안에서 굉장히 좋은 난민 정착 케이스로 소개되고 있다."
- 미국에서 생활한지는 오래 됐나?"저는 할아버지(DJ)가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시게 되면서 그곳에서 태어났다. 그러다가 다시 한국에서 살다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다시 유학생활하면서 다시 캐나다와 미국에서 중고교를 나왔고 대학을 애틀란타에서 다녔다. 이후 대학 교직원으로 취직하면서 자연스럽게 애틀란타에 정착하게 됐다."
-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인 2009년에 영정을 들었는데? "그때 마침 제가 한국에서 군대를 전역한 직후라 국내에 있었다. 그해 8월 11일 날 전역했는데 할아버지는 그로부터 일주일만인 8월 18일에 돌아가셨다."
- 김 대표가 운영하는 리제너레이션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어떻게 설립하게 됐는지 설명해달라.'리제너레이션은 난민들의 교육지원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다. 제가 사실 난민문제에 처음 관심 갖게 된 계기가 통일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이중국적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미국 안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인이란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한국인으로서 미국사회에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하면서 살고 있는데,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듣고 자라온 영향도 있어서 통일이라는 문제에 관심이 컸다. 미국 사회에서 이민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건강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데, 나의 역할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2016년이 미국에 중요한 시기였다. 그때 시리아 사태가 전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당연히 난민이 굉장히 큰 이슈였다. 그런데 미국인들 안에 내제돼 있던 타국인을 향한 적대심이나 그들만의 민족주의, 백인우월주의를 자극하는 트럼프라는 인물이 나타났고 그의 대선 캠페인으로 인해 국수주의나 자국민 우선주의가 부활하기 시작한 걸 보게 됐다.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 공통적인 숙제라고 생각하는데 미국의 정체성 자체가 '이민자의 나라'다. 이민자들이 와서 만든 나라고, 다양성과 그에 따른 공존이 미국이란 나라의 큰 힘인데 그 반대로 가고 있다. 그런 걸 보면서 미국이란 나라도 지금 다시 통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다.
오마바 정부 때도 난민을 8만명씩 받아들였다. 시리아 사태가 발생하면서 난민들을 더 수용해야 하는 필요가 있었음에도 미국 내부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시리아 난민은 테러리스트고, 위험하고 왜 굳이 들여오냐'는 논의가 일어나는 걸 직접 봤다. 이런 일방적인 주장으로 '미국 사회도 역행해가고 있구나' 하고 걱정했다.
난민들 입장에서는 어쨌든 미국에 온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다. 미국은 난민 정착 프로세스가 잘 구축돼 있다. 해외에서 이미 심사를 거치고 나서 미국으로 오게 되는데, 계속 난민들을 무조건 배척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위험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이런 걸 보면서 '미국에서도 난민들이 너무 힘들어지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이때 딱 떠오른 게 대한민국에 온 탈북자들이다. 그들도 결국 난민이다. 이 사람들도 정말 힘들게 한국에 왔는데, 한국사회가 이들을 포용하지 못한다. '이들이 정착하게 되는 상황이나 미국 난민이나 다르지 않구나, 뿌리는 동일하구나. 한국사회와 미국사회가 동일한 숙제를 갖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
DJ 유훈 따라 통일 고민하다 난민 문제 천착통일은 국가가 단순히 하나 되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국가가 하나가 되더라도 다시 남한 출신, 북한 출신으로 나뉘고 내부에서 융합이 일어나지 않으면 무의미한 통일이 되는 것 아닌가. 결국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문제다. 서로 다름을 존중하고, 어떻게 하면 나와 다른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나에 대한 고민과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탈북민들 뿐 아니라 타 이주민, 다문화가정이나 외국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사회는 굉장히 배척적이라는 걸 느꼈다.
그래서 통일을 얘기하기 전에 난민부터 도와야 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사는 애틀란타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클락스턴이란 곳이 있는데, 거기에 가서 좀 더 배우고 미국으로 오는 난민들과 함께 삶을 공유하면서 고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2016년 초부터 클락스턴에서 아내와 함께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난민들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클락스턴에서 가까이 지나게 된 가정이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무슬림 가정인데 아이가 10명이다. 원래 이 가정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나와 인근 차드 공화국 난민캠프에서 7년 간 생활했는데 도저히 미래가 안보였다. 특히 아이들의 교육이 걱정되서 미국으로 난민신청을 하게 됐고, 잘 풀려서 미국에 정착하게 됐다.
어떻게 보면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고민으로 정착한 건데, 막상 오면 당장 생계를 책임지는 것 때문에 부모가 아이들을 케어할 수가 없다. 밤에 일하면 임금을 더 주니 부모는 밤에 일을 나갔다 아침에 돌아와야 한다. 이들이 미국에 오긴 했는데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배울 시간도 없고. 아이들을 잘 케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영어도 못 배우고 일만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클락스턴이 교육환경이 좋은 곳은 아니다. 공립학교에서는 아이들 잘 챙겨주지 못하는 상태다. 아이들은 더 공부하고 싶은 열망은 있고, 고등학생들인데 대학에 가고 싶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대학 입시라는 프로세스가 옆에서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어려운 건데, 그게 없는 거다. 클락스턴 난민들이 이런 상황을 깨닫게 되면서 '이 곳 아이들의 교육을 어떻게 해야 되나'라는 고민을 하면서 봉사활동을 1년 동안 했다.
작년 에모리 대학(Emory University)에서 MBA를 끝내게 되면서 진로를 고민하다가...제가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뭐라도 시작해보자고 해서 리제너레이션이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아직 시작한 지 얼마 안됐다. 리제너레이션은 2017년 12월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됐다.
저희가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가 대화의 장을 여는 것, 두 번째가 'Empowering youth through education'이라고 해서 청소년들을 교육을 통해서 세워가는 일이다. 주로 두 번째 미션에 좀 더 포커스가 맞춰진다.
첫 번째에 대해서는, 제가 난민 관심 갖게 된 것도 통일과 통합에 대한 부분이어서 거기 관련된 주제로 강연회도 열었다. 미국인들이 한반도에 관심이 많아서 애모리 대학과 연계해 강연회도 진행했다. 통일을 위해서는 한반도 안에 있는 사람들도 중요하지만 해외에 나가 있는 한인들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일단 애틀란타 한인 청년들과 1주일에 한 번 통일스터디 모임을 진행 중이다.
두 번째로, 아이들 대학 입시 준비를 도와주고 있다. 미국에서 대학가기 위해서는 SAT 시험을 봐야하는데 클락스턴에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은 많지만 SAT에 특화된 교육은 많이 없더라. 그래서 시작한 게 SAT 학원을 열어서 아이들에게 무료로 공부 가르쳐주는 일이다. 처음 공부하고 시작할 때는 '글로벌 시티즌 리더십 캠프'라고 해서 3박4일 간 여러 가지 주제를 놓고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과연 세계시민이라는 건 무엇일까', '내 커뮤니티 안에서 공동체 일원으로 살아가는 리더십은 무엇일까'라는 주제로 아이들과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아내랑 평소에 하는 말이 있다. 난민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연민'과 연결시키는데, 이 아이들이야 말로 더욱 더 글로벌해지는 시대에 적합한 리더상이다. 예를 들어 미얀마에 있던 친구들이 말레이시아로, 태국으로 많이 간다. 이들은 다른 언어와 문화를 접하게 되고, 다시 미국으로 와서 미국의 문화를 습득하게 되는데 마인드 자체가 글로벌한 거다. 이 아이들이 정말 잘 자라야 한다. 교육을 통해 성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