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을 찾아온 구미청년 지도자들(왼쪽부터 최준영, 전병택, 신문식, 이미경, 이재섭, 박찬문).
박도
이역에서 만난 고향 출신의 항일전사
"그런 가운데 내 나이 쉰다섯이던 1999년 8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李相龍) 선생 증손 이항증(전 광복회 경북지부장) 선생과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무장투쟁의 선봉장이었던 일송 김동삼(金東三) 선생 손자 김중생 선생의 알뜰한 안내로 중국 대륙에 흩어진 항일유적지를 보름 동안 답사했다.
그때 나는 헤이룽장성 하얼빈 동북열사기념관에서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군장 겸 총참모장 '허형식(許亨植)'이라는 인물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하얼빈 거주 동포 사학자 서명훈 선생으로부터 그분에 대한 소개를 받는데, 동행한 이항증 선생은 나에게 불쑥 말씀했다.
'허형식 열사는 구미 금오산 사람이에요.'
나는 그 말에 온몸에 전류가 흐른 듯 전율했고, 동시에 가슴이 벅차게 뭉클했다. 그와 함께 내가 이분을 만나기 위해 수륙만리 먼 길을 왔다는 어떤 소명의식을 갖게 되었다.
'구미 임은동에서 태어났어요. 임은동과 상모동은 철길 하나 사이지요.'
나는 '임은동과 박정희 대통령이 태어난 상모동은 철길 하나 사이'라는 말에 또 놀랐다. 그러면서 그 순간 비로소 그동안 내가 그리던 인물을 비로소 찾았다고, 마치 탐험가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어떤 황홀경에 빠졌다."
33세에 장렬히 산화하다
1909년 경북 선산군 구미면 임은동 왕산 허위 선생의 집안 조카로 태어난 허형식은 1915년 일제 경찰과 밀정 및 그 끄나풀에 시달리다가 끝내 만주로 망명했다. 1930년 조국의 독립에 이바지하고 일제와 정면으로 맞서 싸우고자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에 입당한 뒤, 그해 5월 1일 하얼빈 일본총영사관 습격을 주도해 심양 감옥에서 평생 동지 김책과 조상지를 만나 항일전선 전사로 거듭나게 됐다.
1937년에는 동북항일연군 제9군 정치주임으로, 1939년에는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총참모장 겸 제3군장에 임명돼 북만주 제일의 항일파르티잔으로 우뚝 솟았다. 하지만 일제의 빗질 토벌이 한창이던 1942년 8월 3일 북만주 일대 소부대 지도 중 경성현 청송령에서 부하는 살리고 당신은 위만군 토벌대의 총알을 벌집처럼 맞은 뒤 장렬히 산화했다.
허형식은 이육사 시인의 외척으로 <광야>에서 노래한 '백마 타고온 초인'이기도 하다. 국내 처음으로 허형식 장군을 연구한 동북아역사재단 장세윤 박사는 허형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허형식은 당대의 여러 가지 모순을 척결하고, 억압과 폭력, 차별이 없는 사회, 불평등과 탐욕, 약자에 대한 수탈이 없는 사회, 정의롭고 자유로우며 풍요로운 사회,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의 이상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맹렬히 투쟁하다가 끝내 33세의 나이로 괴뢰만주국 토벌대의 총탄에 장렬히 산화했다. 허 장군은 자신과 가문의 이익과 영달을 위해 희생한 게 아니라, 오로지 조국과 민족을 위해 당신 모두를 제물로 바쳤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당선한 장세용 구미시장은 그동안 잘못 알려진 선산 구미 지역의 이미지를 임기 내 말끔히 씻고, 다음 세대에게 충절의 고장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주고자 지역 출신 독립유공자 현창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허형식 장군의 기마상 건립을 기획하고 있었다. 이에 뜻있는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회원들이 <허형식 장군>에 대해 자세히 알고자 나를 찾아온 것이다.
나는 장세윤 박사의 허형식 연구논문을 인용해, 그분이 허형식을 주목했던 점을 일러줬다.
"첫째, 항일연군 지도자들이 대부분 북한 출신인데 견주어 남한 출신이다.
둘째, 구한말 의병장 왕산 허위 선생의 당질이다.
셋째, 항일연군에서 정치 이론과 사상, 대원 교육과 전략전술 분야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넷째, 1940년대 초 최용건·김책·김일성 등과 거의 대등한 고위 간부로 활동했다.
다섯째, 1942년 8월 북만주에서 전사할 때까지 항쟁할 만큼 철저한 적극 무장 투쟁론자였다."
그리고 연세대 신주백 교수는 <만주지역 한인의 민족운동사> 486쪽에서 1942년 소련이 편성한 동북항일연군 교도려 지휘부는 다음과 같다고 밝히고 있다.
"제1영장 김일성
제2영장 왕효명
제3영장 허형식(취임 전 희생), 영장 대리 왕귀명
제4영장 시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