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의 답> 겉표지.
여운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자전적 수필집 <황교안의 답>을 24일자로 출간했다. 걸어온 삶을 간략히 정리한 앞부분과 질의응답 형식으로 국가 비전을 밝힌 뒷부분으로 구성된 책이다. 화보집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간의 활동을 담은 사진도 많이 수록돼 있다. 책 앞표지 뒷면의 앞날개에 이런 말이 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도 있답니다.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무언가를 말이지요."
이 말이 풍기는 정치적 함의가 너무 직접적이지 않나 하는 염려가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바로 다음 문장에서, 좀 엉뚱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언젠가는 어느 한적한 거리에서 오래 전부터 익혀온 색소폰을 멋있게 연주하며 모금 공연을 하려는데···, 야무진 꿈일까요?"
색소폰 거리 공연에 대한 국민적 성원을 부탁하고자 책을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건 그냥 해본 말이다. 그래서 다시 곧바로 본론으로 회귀한다.
"뜻을 같이하는 청년들과 함께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군요. 여러분,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미래 사회를 만들어보면 좋겠지요?^^"
청년들과 함께 새로운 미래 사회를 열어보겠다는 게 이 책을 쓴 취지다. 실업 문제 등으로 고뇌하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들과 함께 새로운 사회를 모색해보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청년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겠다는 생각에서, 책 제목을 <황교안의 답>으로 정했을 것이다.
책 중간 중간에서 그는 "우리 사회의 편협한 청년 정책도 문제입니다. 말은 청년을 위한 정책이라지만 정작 그 중심에 청년은 없습니다"라는 식으로 현존하는 청년 정책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피력하면서 그들을 위한 자기 나름의 해법들을 제시했다.
그 해법이란 것은 "청년에게 관심을 갖자", "대화할 기회를 찾자", "청년에게 기회를 주자"처럼 추상적인 이야기들이지만, 그중 한 가지는 상당히 구체적이다. 바로, 보수의 재건에 대한 대목이다. 청년세대를 상대로 보수 재건에 동참해줄 것을 촉구하는 부분이다.
그는 "젊은이들 중에는 '보수' 하면 낡고 권위적이고 고집불통인 이미지만 떠올리는 분들도 제법 많습니다"라고 한 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보수의 혁신을 외치고 있지만, 정작 보수의 핵심 가치와 그 중요성은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라며 자신이 신봉하는 보수는 수구와 절대로 다르다고 강조했다. 165쪽 짜리인 이 책의 끝부분에 해당하는 157쪽에 나오는 문장이다.
"참된 보수는 바르고 좋은 가치를 지키는 것인 반면, 지키면 안 되는 것을 지키려는 것은 수구이자 가짜 보수입니다. ······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는 참된 보수의 가치를 잘 지켜내야 합니다."
바로 이 부분이 책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청년세대와 함께, 수구가 아닌 보수의 가치를 지켜내자는 게 핵심 메시지다. 촛불혁명을 계기로 급격히 허물어지는 보수 혹은 수구의 가치를 지켜내서 '그들만의 대한민국'을 복원시키고 싶어 하는 황교안의 희망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보수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희망 자체는 바람직하다. 과거는 물론이고 미래에도 보수파는 항상 존재할 것이므로, 참된 보수를 세우자는 주장 자체는 훌륭하다. 하지만, 그가 말한 보수가 과연 미래에도 존립할 수 있을 것인지 의심케 하는 대목들이 책 중간 중간에 산재해 있다.
고스란히 드러난 '황교안의 역사인식'조선시대 보수파는 고려시대 보수파보다는 진보적이었다. 이승만 시대 보수파는 조선시대 보수파보다는 진보적이었다. 4·19 혁명 이후의 보수파는 이승만 시대 보수파보다는 진보적이었다. 또 촛불혁명 이후의 보수파는 그 이전 보수파보다 당연히 진보적이어야 한다.
이처럼 보수파는 시대에 따라 다른 내용을 갖기 마련이인데, 황교안이 과연 촛불혁명 이후의 보수파를 이끌 수 있을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 책 곳곳에 널려 있다. 그가 재건하겠다는 것이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보수'인지 '지키지 말아할 것을 지키는 수구'인지 의문이 들게 하는 대목들이다.
황교안이 새 시대를 이끌 보수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은, 그가 지키겠다고 하는 것들이 하나 같이 우리 국민들이 이미 내다버린 것들이라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70페이지에서 그는 "청년들이 리더십 비전을 어떻게 설계하면 좋을지 조언해주실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제게 리더십의 비전을 보여준 분은 박정희 대통령입니다. ······ 우리 국민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더 나아가 비전을 제시해준 리더였다고 생각합니다."
촛불혁명을 계기로 대한민국에서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대단히 소수다. 황교안이 분류한 보수와 수구 중에서 수구에 포함되는 사람이 아니면 이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희 리더십을 청년세대한테 권하는 사람을 '바르고 좋은 가치를 지키는 보수'로 봐야 할까, 아니면 '지키면 안 될 것을 지키려는 수구'로 봐야 할까? 황교안의 역사인식이 어느 정도인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