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앞 해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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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좌우에 해치(獬豸) 석상이 떡 버티고 앉아 눈을 부릅뜨고 있다. 해치는 중국의 태평성대였던 요순시대에 세상에 나타났다고 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해치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2세기 전한시대에 저술된 <회남자>에 '초(楚)나라 문왕(文王)이 해치관(冠) 쓰기를 좋아했다'는 구절이 있다. 그후 후한시대의 문헌에는 자주 나온다. 후한의 사상가 왕충(王充)의 저서 <논형(論衡)>을 비롯한 여러 문헌에 "동북 변방에 있는 짐승이며, 한 개의 뿔을 가지고 있는데, 성품이 충직하여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면 바르지 못한 사람을 뿔로 받고, 사람이 다투는 것을 들었을 때는 옳지 않은 사람을 받는다"라는 요지로 설명되어 있다.
상상의 동물인 만큼 형상뿐만 아니라 이름도 해치, 해타(海駝), 신양(神羊), 식죄(識罪) 등 다양하게 불렸다. 뿔이 있는 것은 북방계 '해치'이고, 뿔이 없는 것은 남방계 '해태'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 주장에 의하면, 광화문 앞의 석상은 뿔이 없으므로 남방계 해태라 할 수 있다. 서울시 상징 캐릭터로 정한 후 '해치'를 공식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어느 책에서는 '해치'가 순우리말 고어로 '해님이 파견한 벼슬아치'의 줄임말이라고 했는데, 너무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경복궁 앞에 해치 세운 진짜 의미진실이야 어떻든 해치는 시비사정(是非邪正)을 분별하는 능력이 있는 신수(神獸)로 알려져 왔다. 그래서 동양 여러 나라에서 거짓말하는 사람들을 들이받으라는 법의 상징물로써 죄를 다스리는 관청 앞에 해치 석상을 놓았다. 조선시대의 사헌부는 관리를 감찰하고 법을 집행하는 곳인데, 대사헌이 입는 관복의 흉배에 해치를 새겼고, 머리에는 '해치관'을 썼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하고 한 쌍의 해치 석상을 앉혀둔 것은 궁의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다. 그렇지만 해치가 화기를 제압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그 근거를 찾기 어렵고, 그러한 내용을 적어 놓은 기록도 없다.
어느 사학자는 숭례문(崇禮門)의 현판을 세워 쓴 것과 흡사한 풍수학적 이야기가 덧붙여진 것이라고 말했다. 풍수지리설과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관악산은 불의 기운이 강한데, 그 기운을 막기 위하여 세로로 쓰였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정확한 기록을 찾을 수 없고,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야사(野史)에 전해지는 이야기가 많은 사람의 흥미를 끌어 그럴싸하게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숭례문의 현판은 <논어>에 수록된 공자의 가르침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는 학설이 있다. 조선 왕조의 사상을 뒷받침한 유교의 절대 경전인 <논어>에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흥어시 입어례 성어악)'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해석하면 '시에서 흥이 생기고, 예에서 일어나고, 음악에서 이룬다'는 것인데, '예(禮)를 통해 사람이 일어난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것들을 유추해 볼 때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앞에 해치상을 둔 이유는, 극심한 세도정치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나라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는 정치적 의지로 읽힌다. 출퇴근하는 관리들에게 해치의 꼬리를 쓰다듬으면서 마음속 먼지를 털어내고 공명정대한 정사를 다짐하라는 의도였다고 짐작한다. 그런데 해치를 상징하는 속칭 '독각수(獨角獸)'가 없어서 선악을 가리지 못하고 모리배들이 그렇게 활개를 쳤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법을 뜻하는 한자 '법 법(法)'은 '삼수변(氵)'에 '갈 거(去)'로 구성되었지만, 이는 후대에 와서 단순화된 글자다. 원래 갑골문의 모양은 '법 법(灋)'처럼 생겼다. 즉 삼수변 옆 '갈 거(去)' 위에 '해태 치(廌)' 글자가 하나 더 있다. 시비선악을 가릴 줄 아는 해치가 옳지 않은 사람을 뿔로 들이받아 제거[去]함으로써 평평한 물(氵)처럼 공평함을 이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법(法) 자에 대한 현대의 글자를 보고 '물 흐르듯이 해야 하는 게 법'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적, 어원적 유래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흔히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다. 정말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말로 이해된다. 대다수 사람은 굳이 법이 없더라도 나쁜 짓을 하려고 하면 양심에 찔려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바로 그러한 마음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불법을 저지르고, 까닭 없이 악을 행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착하고 정상적인 사람은 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야 악으로부터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만약 법이 없다면 권력을 가진 자들이 멋대로 세상을 주무를 것이다.
두 눈 가리고 법정에 들어간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