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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자리에는 테이블도 있고, 앉아서 쉴 만큼 공간도 넉넉하다.
김강현
일행은 아직 자고 있고, 주변은 조용하다. 화장실에 가서 양치와 세수를 했다. 낮에는 다른 사람들도 다 씻느라 자리가 없었는데, 밤이 되니 비어 있어서 겨우 씻을 수 있었다. 다시 돌아와 자리에 누워 꺼놨던 핸드폰을 켜고 사진첩을 열었다.
사진 몇 천 장 속에는 지난날 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함께 찍은 사람들과의 추억, 그때의 분위기가 선명히 떠오르는 사진부터 '이건 언제 찍은 거지' 하는 사진까지. 사진을 보고 있자니 또 그리움이 몰려온다.
사진을 다 보고나서 여행을 떠나기 전 친구들이 써준 롤링페이퍼와 편지를 읽다 눈물이 났다. 이 여행에서 느낀 가장 큰 감정 중 하나는 그리움이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돌아가서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지' 하는 다짐과 맞물려 계속 커진다.
무언가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고 하지만, 나는 이미 소중한 것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행을 시작한 지 2주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모든 순간들이 그립다. 사진 속 웃고 있는 그때의 내가 부러울 정도로.
여행을 떠나오며 친구들에게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는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바이크를 고치면 부지런히 달려 얼른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은 외롭고 길다. 통로로 나가봤지만 창밖은 캄캄한 어둠만 있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지루함이 깊어지다 못해 해탈의 경지에 오른 느낌이다.
지루하다는 감정을 느낀 게 언제인지 헤아려본다. 고등학교 졸업도 하기 전에 공장에 취직해 비정규직 노동자로 하루에 12시간, 길게는 17시간씩 일했고, 대학에 입학해서는 학생 대표자를 했다. 학교를 나오고 나서는 또 공장에 들어가 하루에 12시간씩 일하며 여행자금을 모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긴 어렵겠지만 참 바쁘게 살았다. 그래서 지금 느끼는 지루함이 낯설다. 아무것도 할 게 없고,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나는 지금 인생의 쉼표를 찍고 있다. 조금 쌀쌀해져 자리에 누워 이불을 덮고 일기를 쓰다 잠들었다.
이르쿠츠크의 첫 느낌은 '회색'다음날 아침, 이제 내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기차 안에서 편하게 신고 있던 샌들을 벗고 부츠를 신었다. 꺼냈던 짐을 다시 가방에 넣고 내릴 준비를 마친 후 빵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잠시 후 안내방송이 나왔고 창밖으로 도시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르쿠츠크다. 루슬란이 치타보다 더 큰 도시라고 한 것처럼 사람도 차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