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자' 석방 촉구 지난 6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헌재의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한 판결과 대체 복무제 마련과 구속된 양심적 병역거부자 석방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병역거부와 대체복무가 사회적인 이슈로 등장한 건 2000년 이후, 그동안 모두 13건(국회, 국방부 발표안 모두 포함)의 대체복무 법안이 발표되었다. 17대 국회에서 임종인 의원과 고 노회찬 의원이 대표발의한 것을 시작으로, 18대 국회에서는 김부겸 의원과 이정희 의원이, 19대 국회에선 전해철 의원이, 그리고 20대 국회에선 전해철·이철희·박주민 의원이 법안을 발의했다. 한편, 참여정부의 국방부가 정부 입법으로 대체복무안을 준비하기도 했다. 헌재 결정 전까지 대체복무제를 입법 발의한 의원들은 모두 진보정당 계열이거나 민주당 계열이었고, 보수정당은 대체로 대체복무에 반대했기 때문에 법안을 발의하지 않았다.
지난 6월 28일 헌법재판소의 병역법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로 법안 발의가 4건 추가됐다. 자유한국당 이종명 의원과 김학용 의원, 바른미래당 김중로 의원, 민주평화당 이용주 의원이 저마다 대체복무 법안을 발의했다. 국방부는 8월 안으로 대체복무안을 발표한다고 밝혔고, 현재 진행 상황을 언론을 통해 브리핑했다.
그동안 꾸준하게 대체복무제의 필요성을 주장해온 시민단체들 또한 합리적인 대체복무제도의 기준을 발표했다. 13개의 법안들, 특히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7건의 법안과 국방부의 안, 시민사회의 안들을 바탕으로 이제 대체복무제도를 실시하기 위한 현실적인 논의를 이어가야할 단계다.
[국방부의 안] 현실적이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어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이번 달 말에 발표 예정인 국방부의 대체복무제는 소방서나 교정시설 근무 등의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 합숙을 원칙으로 하고 예외적으로 출퇴근 복무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국방부 대체복무안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대체복무 기간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27개월과 36개월을 중심으로 검토하며 제3의 안이 나올 수도 있다고 밝혔다. 27개월은 국제 기준이 현역 군 복무의 1.5배를 넘는 기간을 징벌적 성격으로 규정하고 있는바, 징벌적 성격을 피하는 최장의 기간이다. 국방부는 36개월에 대해서는 "영내에서 24시간 생활하는 현역병이 박탈감을 느끼지 않고 병역 기피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충분한 기간 설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전문연구요원·공중보건의·공익법무관 등 다른 대체복무기간이 34~36개월인 것과의 형평성을 고려한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국방부의 대체복무안은 지금까지의 논의를 포괄적으로 검토한 것으로, 대체로 현실적이면서도 당사자들의 입장까지 고려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대체복무 기간이 2배인 것은 몇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다. 먼저 국제 인권기준을 위반해 유엔의 권고를 받게 될텐데 이는 국방부 또한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현역병이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 기간, 악용되지 않을 기간이 왜 2배인지에 대해서도 근거가 빈약하다. 1.5배라면 박탈감을 느끼는지, 악용될 가능성이 높은 건지,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리고 공중보건의나 공익법무관의 복무기간과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들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긴 기간을 복무하는 대신 사병들보다 훨씬 높은 급여를 받는다. 반면 대체복무는 사병들의 월급에 준하는 급여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 최저임금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급여를 받으며 전문연구요원이나 공중보건의만큼 긴 복무를 수행하게 하는 것은 개인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
[자유한국당의 안] 대체복무가 죄? 헌재 결정 퇴색시켜
국방부가 준비하고 있는 대체복무는 그래도 현실적인 적합성을 고려하면서도 당사자들의 입장을 반영하려 했다. 하지만 국회에 발의된 법안들 중에는 현실적이지도 않고, 당사자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법안도 있다.
자유한국당 김학용 의원과 이종명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법안이 그 예다. 이 안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대체복무 영역으로 지뢰제거 등을 명시했다는 점이다. 김학용 의원의 법안은 종교적 병역거부자만 인정하고 대체복무 기간을 공군의 두 배인 44개월로 정한 것도 남다른 특징이다.
17대 국회에서부터 지금까지 모두 12건의 대체복무 법안이 발표되었고 2008년 국방부가 발표한 안까지 합치면 모두 13건의 대체복무제 법안이 발표되었는데, 김학용 의원의 법안을 제외한 모든 법안에서 대체복무 기간은 육군 병사를 기준으로 1.5배에서 2배 사이였다. 2배조차도 징벌적 성격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마당에 44개월(3년 8개월)은 대놓고 이건 징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밖에 안 된다.
종교적 병역거부자만 인정한다는 것도 문제가 크다. 김학용 의원은 양심이 본질적으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병역거부자와 제도를 악용하는 자를 구분하고 있다. 양심을 심사하는 게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대체복무제도는 그 양심 때문에 감옥에 가는 사람들이 없도록 만드는 제도다. 심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를 포기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이종명 법안과 김학용 법안에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내용, 즉 대체복무로 지뢰제거를 시키겠다는 것도 문제가 많다. 현실적인 면을 먼저 짚어보자. 현재 지뢰제거 업무는 국방부의 소관으로 민간 영역의 대체복무가 될 수 없다. 물론 국방부가 지뢰제거를 민간에 의뢰할 수는 있는데, 이 경우 군수산업체 외주를 주는 형태가 될 것이다.
군수산업체가 오로지 대체복무만을 위해 다른 군사적인 일과 무관하게 대체복무로 지뢰제거만을 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만약 그렇게 한다 해도 문제는 있다. 이는 이윤을 위해 일을 수주한 민간업체를 위한 일이 된다. 지뢰제거라는 일의 내용은 평화와 공공성을 위한 일이라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사기업의 이윤 창출에 복무하게 되는 것이니 대체복무제의 기본 원칙에 맞지 않다.
원론적인 면을 살펴보자면, 병역거부자에게 지뢰제거를 시켜야 한다는 이유는 군복무와의 형평성을 고려한 것이다. 즉 만약의 경우 목숨까지 위험하고 실제로 여러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군인만큼 위험한 일을 해야한다는 뜻이다. 위험성을 잣대로 형평성을 맞추는 건 아주 나쁜 방식이다. 군복무자든 대체복무자든 가능한 위험한 일을 피해야 한다.
국가가 필요에 따라 젊은이들을 데려갔다면 그 젊은이들이 국방의 의무를 안전하게 수행하게 하는 건 국가의 책임이다. 꼭 필요한 일이고, 다른 대체할 방법이 없는 경우에만, 최소의 인원을, 최대한 안전한 방식으로 투입해야 하고 불의의 사고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이런 심층적인 고려 없이 군복무 만큼 위험하기 때문에 지뢰제거를 시키는 건 국가가 대체복무자들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는 군복무자들이 겪는 피할 수 있는 위험까지도 정당화할 우려도 있다.
사실 중요한 건 대체복무로 지뢰제거를 시키겠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대체복무로 지뢰제거를 언급하는 맥락이다. 여러 면을 고려했을 때 자유한국당이 아무리 강하게 주장하더라도 지뢰제거 업무가 대체복무로 선정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방위원장 출신인 김학용 의원도 이를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뢰제거라든지, 다른 법안보다 월등하게 긴 44개월 대체복무를 주장하는 것은 이 사안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일종의 퍼포먼스가 아닌가 추론해볼 수 있다.
병역 거부를 가장 강력하게 반대해온 세력이 실은 국방부가 아니라 보수 기독교 세력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병역거부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호와의증인에 대한 보수 기독교의 혐오에 편승하는 목소리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대변하게 되는 셈이다. 이는 정치의 실종이다. 정치란 서로 다른 의견이 여러 정치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타협점을 찾아가는 일일 텐데, 혐오에 편승한 법안에서는 타협은 사라지고 선동만 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