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에 따르면 전세계 TV시장에서 50~60인치대 제품의 시장점유율이 올해 처음 50%를 넘을 것으로 예측됐다. 반면, 지난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40~49인치 제품은 점유율이 2.6% 떨어졌다. 사진은 2017년 6월19일 서울의 한 할인매장에 전시돼있는 대형TV.
연합뉴스
수리비용 정도로 저렴하고 성능이 좋은 신제품이 많다는 그의 말을 중간에 끊고 물었다. 새 TV를 살 때 사더라도, 우선 정확한 고장 원인은 알아야겠다고 채근했다. 거듭된 질문에 그제야 그는 진단 결과와 상관없이 수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고백했다. 액정이든 메인보드든 현재 같은 모델의 부품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집 TV가 이미 단종된 제품이라 부품이 생산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회사 내에서도 오래전에 PDP 사업부가 해체된 상태라며 양해해달라고 했다. 그럼에도 수리를 하겠다면, 전국 서비스센터에 남아있는 부품을 수소문하거나 중고품에서 떼어 내 재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물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기약이 없는 일이다. 결국 난 제품 수리를 위한 '애프터서비스'는 못 받고 새 제품을 사야 하는 이유만 설명받았다. 하나 마나 한 애프터서비스로 애먼 출장비만 허비한 셈이다.
우리나라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애초 제품의 수명은 기업에 의해 결정되고, 소비자에게는 사실상 아무런 선택권이 없다. 일정 기간이 지나 기업이 관련 부품의 생산을 멈추면 그것으로 제품의 수명은 다하게 된다. 소비자가 아무리 조심스럽게 사용한다 해도, 일단 고장이 나면 재고나 중고품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업들의 '전략'을 모르진 않았다. 지난해 초 17년 된 자동차를 폐차할 때 깨달았다. 이태 전부터 도미노 블록 쓰러지듯 곳곳이 고장 났는데, 그때마다 부품을 구할 수 없어 여러 정비업체를 전전하곤 했다. 새것은커녕 다른 자동차에서 뜯어낸 중고품조차 귀해서, 그저 도로 위에서 서지 않길 기도할 뿐이었다.
정비업체 이곳저곳을 찾아갈 때마다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똑같은 조언을 들었다. 그만하면 오래 탔다는 '칭찬'부터, 애초 기업이 생산할 때부터 교체 주기를 감안하기 때문에 때가 되면 예외 없이 고장이 날 수밖에 없다는 '위로'까지 한결같았다. 해외에서 호평받는 좋은 차 아니냐는 '우문'에, 내수용과 수출용은 품질이 원래 다르다는 '현답'이 나오기도 했다.
고쳐서 탈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겠는데, 애초 불가능한 일이었던 셈이다. 그 흔한 접촉사고 한 번 나지 않은 차였지만, 더 이상 부품을 구하기도 힘들뿐더러 수리하는 비용이 찻값을 훌쩍 뛰어넘어 울며 겨자 먹기로 새 차를 살 수밖에 없었다.
언제부턴가 신제품 광고에서 '내구성'이라는 말이 사라져버렸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오래 사용할 수 있다는 게 더 이상 미덕이 아니라고 여기는 걸까. 신제품은 시장에 마구 내놓으면서도, 파는 데만 혈안이 되어있을 뿐, 이미 판매된 제품에는 그만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거칠게 말해서, 팔 때는 환심을 사기 위해 별의별 짓 다 하다가 팔고 나면 서둘러 싫증을 내도록 만드는 꼴이다.
자동차든, 가전제품이든, 스마트폰이든, 우리나라에서 신제품의 교체 주기가 유난히 짧다는 건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교체 주기가 자동차는 평균 7년, 스마트폰은 채 1년도 안 된다는 충격적인 통계자료도 있다. 따지고 보면, 이는 이러한 기업의 판매 전략에 많은 소비자들이 현혹된 결과다.
교실에 꽂힌 충전기에 놀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