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드’에 맞서는 발칙한 주부가 등장하는 선호빈 감독의 영화 'B급 며느리' 포스터.
영화연구소
선 감독에 따르면 아내는 결혼 후 시집 식구를 만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시어머니가 "왜 웃지 않니? 웃으면서 인사해야지. 다시 인사해" 등 크고 작은 간섭을 했기 때문이다. '시동생은 도련님이라고 불러야지' '차는 며느리가 끓여와야지' 등의 '관습적' 가치들을 아내는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결혼하는 순간 독립적 인격체인 '나'를 버리고 시댁의 질서에 순종하고 인내하는 게 당연하다고 보는 어른들의 기대를 아내는 거부했다. 선 감독은 그런 아내에게 "우리 엄마 선씨 집안에 시집와서 그렇게 희생만 하고 불쌍한 사람이니까 좀 봐줘"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김진영씨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 오빠가 나를 지금 어머니처럼 만들고 있는 거야. 그렇게 (시댁 식구에게) 맞춰주면 그렇게 되는 거라고. 그렇게 불행한 인간을 만들고 있다고 오빠가. 난 안 해."설거지 등 집안일을 도맡게 된다는 것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시어머니, 저 마음에 안 들어요"라고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 사소해 보이지만 그게 핵심이었다. 결국 진영씨는 "시댁에 안 가겠다"고 선언했고, 선 감독은 지난 5월 어버이날에도 아들 해준(6)이만 데리고 친가에 다녀왔다.
선 감독은 회사가 통합할 때 인턴, 비정규직 등 '약한 고리'가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과 결혼 후 '약자'인 여자들 간에 고부갈등이 나타나는 현상이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가족 간 갈등의 배경에는 '가부장제적 가족주의'를 중시하는 아버지의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창피했지만... 서로 더 알게 됐다영화개봉 후 가족의 반응을 묻자 선 감독은 "부모님은 많이 창피해하신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 제작과정에서 평소 못 했던 대화를 많이 할 수 있었고 온전히 이해는 못 하지만 서로를 좀 더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아내 진영씨는 최근 카페에서 시간제 일을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결혼하고 돈 버는 경제행위는 처음 하는 거라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결혼 후 어쩔 수 없이 진영이는 애를 키우고 저는 사회생활을 했어요. 애한테 완전히 종속되어서 한때 우울증도 왔고요. 진영이가 번역을 본격적으로 배워볼까 그러는데, 언어 감각이 있거든요. 많이 도와주고 싶어요."선 감독은 몇 년 전 아들 해준이를 맡길 어린이집을 찾기 위해 인천 강화도로 이사했다. 도시를 벗어났어도 벌이가 일정치 않은 선 감독에게 이런저런 명목으로 부모들 지갑에서 나가야 하는 월 수십만 원의 보육비는 큰 부담이다. "빚을 덜 내고 양육할 수 있는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았지만 한 달, 한 달이 정말 빠듯하다"고 그는 말했다.
다음 영화는 '개발독재시대의 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