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를 화물로 부치고나서 샤샤의 차를 차고 루슬란의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는 루슬란이 좋아하는 음악과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한 번씩 돌아가면서 틀었다.
김강현
루슬란은 어머니가 이 동네에 오셨다며 함께 저녁식사를 하자고 했다. 그가 어떤 음식을 먹고 싶으냐고 묻길래, '한국에서는 맵고 뜨거운 국물로 해장을 한다. 아직 술이 안 깨 그런 음식을 먹고 싶다'고 했더니, 시내에 있는 중국음식점에 가잔다.
식당엔 어머니가 먼저 와 기다리고 계셨는데, 정장차림에 굉장히 세련된 중년 여성이다. 목걸이와 시계, 반지 등 보석 장신구도 많다. 역시 루슬란의 집안은 상류층임에 틀림없다.
메뉴를 잘 모르는 우리는 루슬란에게 주문을 부탁했고, 그는 탕수육과 고기완자 등을 주문했다. 또, 아주 매운 탕을 주문하며 '코리안 스타일'로 해달라고 종업원에게 얘기했다. 종업원은 나를 보고 알겠다는 웃음을 짓더니 잠시 후 음식을 내왔다.
빨간 국물에 얼핏 짬뽕같이 생긴 그 탕은 냄새만 맡아도 코가 아찔해질 정도로 매웠는데, 원래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나는 한 숟가락을 입에 떠 넣자마자 땀이 줄줄 흘렀다. 루슬란도 그 맛이 궁금한지 숟가락 끝으로 살짝 찍어 맛보더니 격한 기침과 함께 '미친 음식'이라고 했다.
못 먹을 정도로 매웠지만 루슬란이 생각해 주문해준 음식이고, 매운 것을 잘 먹는 한국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오기도 생겨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겨우 다 먹었다.
루슬란의 어머니는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셔서 많은 대화를 할 수는 없었지만, 한국 김치를 좋아하신다며 나중에 루슬란과 함께 한국에 놀러가겠다고 하셨다.
안녕, 내 소중한 친구여식사를 끝내고 어머니와 인사를 하곤 집에 남은 짐을 챙기러 갔다. 짐을 챙기고 떠날 준비를 하면서 루슬란에게 선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바이크 무게를 줄이느라 꼭 필요한 물건 말고는 다 버린 상태여서 줄만한 게 없었다. 결국 줄만한 선물을 찾지 못해 지갑에 있는 한화 5만원권과 1만원권, 1000원권을 선물로 줬다. 언젠가 한국에 왔을 때 이 돈으로 내가 있는 곳까지 택시를 타고 오라는 말과 함께.
짓궂은 장난도 많이 치고 과격하기도 하지만 루슬란은 정말 마음이 따뜻하고 정이 많은 친구인 것 같다. 영어를 잘 못하는 우리와 대화하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이렇게까지 도와주는 게 귀찮았을 텐데, 하나하나 챙겨주고 좋은 추억을 선물하려는 그가 정말 고마웠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충분히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덕분에 알았다. 그는 소중한 내 친구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제 떠난다는 게 슬펐다. 그를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아마 다시 만나기는 힘들겠지. 우리는 너무 멀리 떨어져있고, 삶도 서로 다르니까.
그의 집을 나와 가로등 불빛 아래 길을 따라 기차역으로 향했다. 헤어지는 게 아쉬운지 가는 내내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