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지법앞 항의시위 '안희정이 무죄면, 법원은 공모자'14일 오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성폭행 혐의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가운데 페미당당, 불꽃페미액션, 한국여성단체연합, 녹색당 등 여성단체 회원과 시민들이 오후 7시부터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앞에 모여 '안희정이 무죄면, 법원은 공모자다' '한국남성들은 오늘 성폭행 면허를 발부 받았다'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항의시위를 벌였다.
권우성
"한국 남성들은 오늘 성폭력 면허를 발부받았다."
14일 오후 6시 20분께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 인도에 피켓을 든 시민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수행 비서를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선고 직후인 이날 낮부터 소셜미디어에서는 "오후 7시 서부지법에 모이자"라며 항의 행동을 제안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오후 7시 정각, 100여 명이 참석해 시작된 행사는 이후 참여 인원이 급속하게 불어나기 시작했다. 오후 8시를 넘겼을 땐 경찰 추산 400명이 결집했다. 약 30미터 길이의 정문 앞 인도는 "안희정이 무죄면 법원도 공모자다" "여성에겐 경찰도 국가도 없었다" 등 피켓을 든 시민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모이자" 소셜미디어서 부글부글... 평일 400명 운집 현장에 모인 시민들은 14일 판결을 두고 재판부가 '현실'을 외면한 결과라고 혹평했다. 같은 날 오전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조병구)는 안 전 지사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만한 위력을 가졌다고 인정하면서도, 이를 이용해 간음과 추행을 한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판단의 주요 근거는 "최소한의 회피와 저항을 할 수 있어 보임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피해자의 '태도'였다.
첫 번째로 자유발언을 신청한 20대 여성은 "오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너무 분해서 온몸이 덜덜 떨렸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재판부는 성적자기결정권을 가진 피해자가 성폭행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부인하지 않은 것이 미심쩍다는 식으로 판단했다"라면서 "이는 여성이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는 사회적 관계 등을 철저히 무시한 피해자 탓하기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또 "재판부는 사건 직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범죄 사실을 인정했다가 법정에서 진술을 바꾼 안 전 지사가 아니라 피해자를 의심했다"라고 지적했다.
방청석에서 재판을 꾸준히 지켜본 여성주의 연구가 권김현영씨는 "피해자가 수행비서로 업무를 시작한 지 3주 만에 첫 간음이 이뤄졌고 공소사실 10건 중 8건은 두 달 동안 지속적으로 이뤄졌다"라면서 "업무 파악도 못한 피해자에게 그 공간에서 가장 큰 권력이 가진 사람이 성적으로 접근한다면 여성주의를 오래 공부한 저역시도 혼란스러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판결은 "재판부가 한국 여성들에게 성적자기결정권 행사를 위해서는 모든 직업적 커리어를 포기하라고 한 것"이라고 정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