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민족촌에서 내려다본 태평양타이둥 시내에서 해안선을 따라 50km 남짓 거리를 왕복운행하는 버스노선이 있는데, 어느 곳에서 내려도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태평양을 마주할 수 있다.
서부원
천신만고 끝에 타이둥에 도착한 건 밤 9시가 다 되어서였다. 고도(古都) 타이난의 매력에 빠져 지나치게 여유를 부린 탓일까, 기차 편을 예약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출발 이틀 전이었는데도 이미 좌석이 매진되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타이난에서 가오슝을 거쳐 타이둥으로 가는 기차가 하루에 고작 세 편뿐이라는 사실을, 예약하러 간 그때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곧장 타이난 기차 역 근처의 장거리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가 버스 편을 알아봤지만, 그 또한 허사였다. 남쪽으로 가는 버스 편은 아예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원은 오로지 타이중이나 타이베이 등 북쪽 도시를 연결하는 버스 노선만 운영한다면서, 우선 가오슝으로 통근열차를 타고 간 뒤, 버스든 기차든 타이둥으로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라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결국 하루를 길에서 고스란히 허비한 셈이 됐지만, 천만다행으로 가오슝에서 타이둥으로 떠나는 마지막 기차 편 좌석이 몇 장 남아 있었다. 밤 기차 안은 유독 외국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표정으로 보아 그들에게도 타이둥 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도착하기도 전에 타이둥은 여행자들의 발길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 새침떼기 같은 도시로 각인됐다.
하지만 타이둥은 그러한 교통의 불편함을 몇 갑절로 되갚아주는 엄청난 매력을 지닌 도시였다. 어떤 목적으로 찾았든 모두 만족해할 수 있는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타이둥 시내와 주변을 여행하다 보면, 타이완의 다양한 문화를 이해할 수 있고, 일망무제 태평양을 가슴에 담을 수도 있으며,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는 축제와 예술의 힘을 절감하는 기회도 갖게 된다.
새벽 5시, 열기구가 뜹니다우선, 타이둥은 대륙에서 건너온 중국인들에 터전을 빼앗기고 밀려난 원주민들이 많이 사는 도시다. 소수민족이 전체 주민의 35% 정도를 차지하는데, 타이완 내에서는 인접한 '화리엔(花蓮) 현'과 더불어 단연 압도적인 수치다. 그래선지 도시의 공기도 타이완 내 다른 곳과는 사뭇 다르다. 어떤 이는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의 어느 도시에 온 듯한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도 타이완의 고대 문화를 이야기할 때, 중국 대륙보다 필리핀과 오키나와, 팔라완 등 오세아니아 여러 섬들과의 관련성이 먼저 거론된다. 의식주 등 문화적 특징이 인접한 중국이나 우리나라보다 저 멀리 인도양 너머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와 더 유사하다는 학설도 제기되고 있다. 타이완에서 그러한 주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바로 이곳 타이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