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군 고서면 후산마을에 있는 대한민국 명승 제58호. 명옥헌 원림.선홍빛 꽃들 사이로 머리에 팔작지붕을 이고 있는 아담한 정자가 양반집 규수 인양 다소곳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민혜
중국 송나라 때 시인 양만리(楊萬里)는 '동지섣달 월계화 앞에서'라는 그의 시에서 "지도화무십일홍(只道花無十日紅), 차화무일무춘풍(此花無日無春風)"라고 노래했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그저 붉은 꽃이 피어야 십일을 넘기지 못하지만, 이 꽃은 날도 없고 봄바람도 필요 없네"라는 뜻이다.
열흘 가는 붉은 꽃이 없는 줄 알았던 옛 시인은 날도 따로 없고 봄바람도 필요 없이 사시사철 꽃을 피우는 월계화를 보고 그 아름다움과 강인한 생명력을 찬양했다.
'차이나 로즈(China rose)'로 알려진 월계화는 야생 장미의 일종으로 중국 남방 지역에 많이 자생하고 있다. 서리와 눈을 두려워하지 않고 꽃을 피운다고 해서 투설홍(鬪雪紅), 봄을 이긴다 해 승춘(勝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시인 묵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시인 양만리가 유독 사랑했던 월계화에 버금가는 꽃이 있다. 사시사철은 아니더라도 한 여름부터 가을로 넘어가는 문턱까지 백일 동안 남도 땅을 온통 붉디붉게 물들이는 꽃이 있다. 사찰이나 무덤·서원·향교·누정을 진홍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주인공은 중국 자미성(紫薇省)에서 건너온 목 백일홍 꽃이다.
요즘 남부 지방 어느 곳을 지나더라도 쉽게 만날 수 있는 백일홍은 여느 꽃과는 다르다. 단 며칠 동안 화사하게 피었다가 일시에 사라져 버리는 그런 꽃이 아니다.
석 달 하고도 열흘 동안 꽃을 피워낸다. 나락이 필 때까지 질기게 피어 있다. 모든 것이 먹을 것과 연결되는 가난했던 시절, 이 꽃이 지고 나면 비로소 쌀밥을 먹을 수 있다 하여 남도사람들은 이 나무를 '쌀밥 나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