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는 시민들분당 정자동 탄천에서
이동규
지난 2016년 작고한 이탈리아의 중세학자 겸 소설가였던 움베르토 에코는 유럽을 여행하는 중에 어느 도시나 마을에 머물 때면 가급적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두발과 두 다리로만 이동하며 생활할 때 비로소 중세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그네들이 느꼈던 당시의 감정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분명 휴식을 취하려고 여행을 갔음에도 불구하고 중세학자라는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은 것을 보니, 그는 가히 프로 중의 프로라고 할만하다.
어느 프랑스 문학잡지에서 그가 인터뷰한 이 내용을 읽은 뒤부터, 나도 가끔 해외여행을 할 때 그 나라의 소도시에 한동안 머물 때면 일부러 걷기 삼매경에 빠져보았다. 한손에 구글 맵을 켠 채 지근거리는 물론이고, 대략 수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까지 그야말로 '툭'하면 걸어 다녀보았다. 가끔 자전거를 빌려 타는 꼼수를 부린 적은 있지만, 양심상 차는 타지 않았다.
항상 유럽 지역만 갔던 것은 아니라 종종 에코가 경험했던 고색창연한 유럽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공간을 누비고 다닌 적도 많지만, 어쨌든 그렇게 시종일관 걷기를 생활화하다보니 적어도 그가 말한 '중세적 마인드에 대한 공감'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도 같았다.
살기 위해 걷던 시절걷기는 물론 좋은 '운동'이다. 신체를 건강하게 단련시켜 주고, 이동하는 동안 천천히 주변을 음미하게 만들어 마음에 여유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늘 바쁜 일상에 치어 주변의 모든 사물과 사건들을 그저 스치듯이 보낼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에게, 걷기 행위는 그야말로 스스로를 새롭게 돌아보게 하는 '느림의 미학'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세의 사람들에게도 걷기가 미학의 문제였을까 싶다. 그나마 말과 수레 등 대단찮게나마 교통수단이라도 이용할 수 있었던 귀족이나 상인 계층에게는 걷기가 어느 정도 기분전환거리였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러한 교통수단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평민 이하의 지역민들에게는 걷는다는 행위 자체가 삶의 일부였고, 노동의 일부였을 테다. 그것도 결코 우아하거나 실용적이지 않은, 투박한 삶과 비효율적인 노동으로서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투박함과 비효율성은 그들에게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내몰리듯 이미 떠안겨진 필연적이고도 운명적인 족쇄나 다름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