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전문점에서
김강현
"가까운 도시니까 바이크를 이르쿠츠크로 가져가 수리해야 할 거야"라고 루슬란이 말했다. 그래야겠다고 생각하고 GPS를 검색해 거리를 보니 직선으로 1100킬로미터가 넘는다. 루슬란은 분명 가까운 도시라고 말했는데…. 러시아인들의 거리 감각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의 세 배를 이 고장난 바이크로 달리기엔 무리다. 도착하기 전에 바이크가 완전히 고장날 게 뻔했다. 이 생각을 루슬란에게 전하니, 기차를 타고 가는 방법을 추천했다. 바이크는 화물로 보내고, 우리는 기차로 이동하는 것이다.
라이딩하며 눈으로만 봤던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는 것은 좋은데, 화물을 보내고 받는 과정을 언어가 통하지 않는 우리가 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한참 걱정하고 있는데, 루슬란이 "내가 도와줄게 걱정하지 마. 우린 친구잖아"라고 말했다. 그 말이 정말 감동적이어서 순간 루슬란을 확 끌어안을 뻔했다.
그는 "오늘은 시간이 늦어서 못 가. 시간표랑 화물을 따로 알아볼 때까지 우리 집에서 지내"라고 말했다. 구세주가 따로 없었다.
왁자지껄한 밤샌드위치를 마저 먹고 공원에 앉아 있다가 또 출출해진 우리는 루슬란이 추천하는 '싸고 맛있고 배부른 식당'에 가서 내 얼굴만 한 케밥을 한국 돈으로 약 1200원에 사먹었다. 한국에서도 먹어본 적 없는 환상적인 맛에 가격도 저렴하다. 입안에 케밥을 가득 넣고 우물우물 씹으면서도 루슬란에게 연신 엄지를 들어 보여줬다.
케밥을 먹고 나와 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한 거리를 걸었다. 루슬란은 한 친구를 더 집에 데려가자며 어느 건물 앞으로 가서 통화했다. 이 건물이 뭐하는 곳이냐고 물으니, "헬스장이야. 지금 만나는 친구는 엄청 뚱뚱해서 운동하는 중이거든"이라며 장난스럽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