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저녁 퇴근시간. 서울 사당역 인근에서 시민들이 경기도 지역이 목적지인 광역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워킹맘의 새벽5시네 달 전 나는 경기도 용인에서 서울 서부로 출퇴근을 했다. 왕복 4시간이 걸렸다.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서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6시에 집을 나섰다. 출근시간에는 그나마 차가 막히지 않아, 회사까지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퇴근은 답이 없었다. 퇴근시간대 서울 도심 도로와 경부선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간혹 셔틀버스를 놓치면 서울역이나 강남역에서 빨간 광역버스를 타야 했다. 퇴근시간에는 자리가 없었다. 사람들은 버스 계단까지 빽빽하게 서서 1시간여를 가야 했다. 오래된 버스냄새와 밀착된 사람들의 땀냄새, 너도 나도 피곤한 삶의 모습에서 인간의 존엄성이란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서민의 삶, 그 풍경 안에 내가 있는 것이 이상하게도 너무 슬펐다.
밤 9시. 워킹맘의 퇴근은 또 다른 출근이다. 집에 도착하면 이미 온 몸의 기운이 다 빠져버린 뒤다.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씻지도 않고 있었다. 아이들의 씻기와 숙제, 책 읽기를 마치고 10시까지 재우는 것이 매일의 미션이었다. 하지만 바닥까지 에너지를 끌어 모아도 더 이상 나올 것이 없었다. 나오는 것은 짜증뿐이었다. 아이들에게 온갖 짜증과 협박을 했다.
"빨리 빨리 못해! 10분 내로 안 하면 혼날 줄 알아!"
"얼른 씻지 않으면 오늘 책 읽어주는 거 없을 줄 알아!"내 몸이 힘드니 모든 상황이 힘들게 느껴졌다. 남편과 부부싸움도 잦았다. 너무 힘든데 회사를 그만 둘 수 없는 상황이 짜증났고, 내 삶이 힘든 것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보상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가장 가까운 남편과 아이들이 내 짜증과 협박을 받아야 했다.
그 즈음 큰 아이에게 틱 증상이 나타났다. 남자아이들에게서 흔히 나타나고 있다가도 없어진다고는 하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럴만도 했다. 하루에 엄마를 보는 시간이 고작 1시간인데, 그 시간 동안 엄마한테 주로 혼나는 게 일이었으니까.
새벽에 출근하니 아이들 얼굴을 볼 수 없었고, 식구들이 모두 모여 밥을 먹으며 대화를 하는 건 주말 아침이나 되어야 가능했다. 남편의 얼굴은 평일에 볼 수 없었다. 아침에는 내가 일찍 출근하고, 저녁에는 남편이 늦었다. 이게 사는 건가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회사에 일을 하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털리는 기분이었다.
시간과 돈을 맞바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