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도 예전
이준영
그 와중에 카페에 피어 있는 한 떨기 꽃을 보았답니다. 처음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이 들어오더군요.
오래전 이 카페, 이 자리에서 어떤 여자 아이와 소개팅을 했었지요. 그 세 시간 동안 그 아이는 제 눈을 거의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망한 소개팅이라고 생각했죠.
비가 추적추적 왔는데, 어쩐 일인지 그 날은 사람 많은 월미도 거리에 사람이 거의 없더군요. 한적한 거리에,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커플이 두 손을 잡고 비닐 우산을 쓰고 걸어가더군요. 걸어가시던 두 분은 잠깐 멈추시더니 창가에 있는 저와 그 여자 아이를 쳐다보았는데 뭔가 분위기가 참 묘했답니다. 어쩐지 힘을 내라는 그런 느낌.
나중에 이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의 기억에 대한 강렬함 때문인지, 인연이라고 생각했죠.
결혼하신 분들은 종종 그런 말을 하죠, 정말 함께 할 사람은 보면 안다고. 아마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은 처음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네요. 하지만 아쉽게도 그냥 홀랑 헤어져버렸네요. 이후에도 몇 번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지만, 결국 지금은 다 남남이기 때문에, 나는 별로 감이라는 건 신뢰를 안 해요. 원래 인생은 각자 장르가 있는 법이니까 암 그렇고 말고.
아 다시 보니까 꽃인줄 알고 찍었던 것도 그냥 빛바랜 잎이군요. 와장창.
아마 수많은 연인들이 저 자리에 앉았겠죠. 그 중 태반 이상은 분명(?) 이별했겠지만 그렇지 않으신 분들도 많을 거예요. 워낙 오래 된 카페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그 공간에서, 나는 달라, 우리는 달라, 언제나 함께 할 거야, 그런 밀어(密語)들이 오갔을 겁니다.
제가 사진을 찍던 그 순간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양해를 구하고 앉아 계신 커플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별 없이 아름다운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무수한 그 말들과 함께 한 시간이 지나간 기억으로만 그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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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투자자, 소설가, 아마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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