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영구평화론칸트는 1795년에 출간한 영구평화론(2008, 서광사)에서 공화국을 기반으로 평화연맹이 가능하다고 이론적으로 논증하였다.
정인곤
평화란 '전쟁의 폐허' 위에서나 가능한 것인가? 모두가 치명적 피해를 입어 더 이상 전쟁할 힘도 없는 상태에서의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평화란 '자유의 무덤'에서만 가능한 것인가? 강력한 제국에 종속되어 굴종의 대가로 누리는 평화 또한 평화가 아니다. 힘에 의한 평화는 진짜 평화가 아니다. 칸트는 확정조항을 통해 평화의 가능조건을 제시한다.
1. 모든 국가의 시민적 정치체제는 공화정이어야 한다.
2. 국제법은 자유로운 국가들의 연방체제에 기초하지 하여야 한다.
3. 세계 시민법은 보편적 우호의 조건들에 국한되어야 한다.
평화를 일구는 첫 걸음이 공화정을 만드는 것이라고 칸트는 말한다. 공화정은 특정 누군가의 소유로 전락하지 않은 모두의, 모두를 위한 정치체제를 말한다. 공화정에서는 전쟁 여부를 시민들 전체가 결정한다. 시민들은 전쟁의 책임과 폐해를 감당해야 하기에 전쟁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지배자의 신민이 아니라면 어느 시민이 감히 전쟁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동안 지배자의 보잘것없는 이유, 한낱 유희로 전쟁이 결정되어왔었다고 칸트는 폭로한다.
국가의 평화는 이미 한 국가의 차원을 넘어서있다. 어려운 방정식인 것 같지만, 칸트는 국가들 간의 평화가 국제연맹 혹은 평화연맹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한 국가가 전쟁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이어서 다른 국가들도 약속하면 되는 것이다. 강력하게 계몽된 시민들이 공화국을 형성하게 되면, 이 공화국이 다른 국가들과 평화연맹을 맺으려 할 것이다. 한번 평화연맹이 맺어지면 점차 연맹은 강화되고 확장될 것이다. 칸트의 전망에서는 공화국과 평화연맹이 자연스러운 연관 관계다.
평화를 떠올릴 때에 쉽게 개별적 의지나 감성에서 시작한다. 반면 칸트는 개인의 도덕성에 기대지 않는다. 그에게 평화의 출발점은 좋은 국가 체제(공화정) 아래서 기대되는 국민들의 집단적 도덕성이었다. 개인들은 흔들릴 수 있으나, 밝게 깨어있는 이성으로 개인들의 일반의지를 구현한 법률, 법의 강제력이 있다면 평화로 가는 길이 반드시 열린다.
이때 가장 큰 장애물이 정치적인 도덕가라고 칸트는 말한다. 이들은 근원적으로 정치와 도덕이 대립하고, 정치는 정치적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기응변으로 모든 환경에 적절하게 적응하는 이들의 노련함은 때때로 설득력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국내의 문제를 벗어나 국가 간의 외교 관계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국내외의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갈 수 있는 길은 정치적 준칙을 따라 똑바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집단적인 단호함이라고 칸트는 말한다.
입법 이상의 전망, 마을공화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