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전통음식인 샤슬릭. '꼬치구이'라는 뜻인데 소고기나 양고기, 돼지고기 뿐만 아니라 해산물 등 꼬치에 끼워 구워먹는 음식은 다 샤슬릭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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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식당 주인의 아들로 보이는 청년이 밖에서 먹고 있던 샤슬릭 꼬치 두개를 접시에 담아 가져왔다. 방금 구운 샤슬릭은 모락모락 김이 나고 있었고, 옆에는 얇게 썬 양파도 같이 나왔다.
환상적인 맛이다. 돼지고기 목살인 듯한데, 굵은 소금과 자작나무 향이 배어있어서 간도 딱 맞는 데다, 겉은 바삭할 정도로 익었고, 안은 육즙이 뚝뚝 흐를 정도로 촉촉하다.
종일 굶었기 때문인지 러시아에서 먹었던 음식 중 가장 맛있다. 양파도 맵지 않고 시원해, 함께 먹으니 정말 천국의 맛이다.
양도 아주 넉넉하다. 내 주먹의 절반 만한 고기 덩어리가 네 개나 끼워져 있다. 순식간에 맥주 두 병과 샤슬릭 하나를 먹어 치우고는 한 개씩 더 주문했다.
밖에서 굽느라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두 번째로 나온 샤슬릭 역시 매우 맛있다. 우리는 연신 감탄하며 두 번째 샤슬릭을 먹어치웠다.
순식간에 맥주 다섯 병과 샤슬릭 두 개를 먹었다. 배도 부르고 취기도 조금 올라왔다. 웃기게도 하루 종일 힘들었고 조금 전까지 만해도 두렵고 무서웠는데, 맛있는 음식과 술을 먹고 나니 행복하다.
이렇게 맛있는 샤슬릭을 먹을 수 있다니, '우연'이 준 선물 같다. 오늘 그 늪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바이크가 고장 나지 않았다면, 먹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일행의 생각도 비슷했다. 우린 이 여행에 흠뻑 빠져있었다. 맥주를 한 병씩 더 주문하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걱정은 저 멀리로 사라져버린 기분이다. 바이크가 고장 난 상황인데도 즐겁기만 하다.
모든 순간이 여행 같다. 아무리 힘들고 두려워도 나는 숨을 쉬고 있다. 새로운 공간에 적응 하는 것도 아주 빨라져 어디에 있어도 두렵거나 어색하지 않다.
한참 이야기하고 있는데, 언어와 생김새가 다른 것이 신기했는지 구석에서 취해있던 남자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예상대로 그들은 트럭운전사라고 했다.
서로 취해서인지 대화가 더 잘 통한다. 그들은 치타에 물건을 배달하는 중에 밤을 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했다. 우리가 바이크로 여행하고 있는 한국인이라고 소개하자, 그들은 엄지를 치켜세운 뒤 휴대용 술통에서 보드카를 따라 우리에게 한 잔씩 건넸다.
집에서 직접 만든 술인 듯했다. 일반 보드카보다 훨씬 더 셌다. 한 잔을 입에 털어 넣었더니, 그게 신기했는지 또 한 잔을 따라줬다.
우리에게만 술을 먹이려는 것 같아 같이 먹자며 그들에게 술잔을 돌려줬고, 그들도 한 잔을 털어 넣더니 다시 잔을 따라줬다.
그들이 건넨 한 잔을 더 먹고 나니 취기가 더 오른다. 종일 힘들어서 술에 더 금방 취하는 듯
했다.
더 먹을 수 없을 것 같다며 그들과 인사하고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씻으려다가 잠들어버렸다.
다시 치타로다음날 점심이 돼서야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떴다. 술을 마신 데다 전날 고생해서인지 온 몸이 찌뿌듯하다. 씻기 위해 샤워실로 갔다. 뜨거운 물은 나오지 않았고, 큰 양동이에 찬물이 가득 받아져 있고, 바가지가 있는 재래식 샤워실이었다.
씻고 나와 식당에 가서 러시아식 볶음밥인 뽈룹을 주문해 먹고는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어제 젖었던 옷은 거의 다 말랐지만, 문제는 부츠다. 부츠 말고는 샌들 밖에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샌들을 신고 가기로 했다. 빠르게 달리면 위험할 수 있겠지만 워낙 천천히 가기 때문에 그리 위험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일행들에게 연락하니, 루슬란의 친구들을 우연히 만나 그들의 집에 초대돼 파티를 했다고 한다. 우린 각자의 여행을 존중했기에,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얘기하고는 치타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도시에 가면 고장 난 바이크를 고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이크 상태는 여전했다. '카랑카랑'거리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오고, 속도는 20킬로미터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주인 잘못 만나 고생하고 있는 바이크에게 미안했다. 치타까지는 멀지 않았지만 한참을 가야할 상황이다. 밤이 되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짐을 빠르게 동여매고 다시 치타를 향해 출발했다.
자투리 여행정보 14. 러시아의 바이크 수리점
여행을 하기 전 걱정했던 것 중 하나가 바이크 고장이다. 수리를 배워본 적이 없어서 고장이 나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한다. 수리점이 얼마나 있을지, 맞는 부품이 있을지, 알 수 없었기에 걱정은 더 컸다.
작은 마을이라도 자동차 수리점은 찾기 쉬운데, 바이크 수리점 찾기는 어렵다. 규모가 큰 도시에서나 간혹 보이는데, 기종에 맞는 부품을 찾기는 어렵다.
바이크 여행을 할 땐 고장 날 수 있는 부품을 챙겨갈 것을 권한다. 또, 간단한 수리는 배워 가는 게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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