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덕 소장
노준희
지난해 친환경 농가에서 살충제 달걀이 발견돼 전국이 들썩거린 사건이 있었다. 이 때문에 친환경에 대한 숱한 논란을 낳으며 진정한 친환경이 무엇인지, 우리나라가 시행하는 유기농 정책은 문제가 없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생산자는 분명 국가가 정한 친환경 기준에 부합하는 사육환경과 사료를 제공하고 보다 친환경적으로 닭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데도 예전 토지 이용자가 수십 년 전에 뿌렸던 농약에 오염된 토양 때문에 DDT 성분이 검출되자 친환경 생산자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국내 친환경 농수축산물 생산환경의 열악함을 그대로 보여준 현실이다.
열심히 정직하게 잘 해와도 유해물질이 한 번 검출되면 농가는 퇴출 대상이나 다름없어진다. 생산자가 의도하지 않은 유해물질의 검출. 반드시 생산자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으로 단정할 수 있을까. 더욱 나은 유기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는 환경 제공을 위한 법 기준이 아닌 위반 사례 적발에만 초점을 맞춘 현 유기농 정책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한국 최초로 GLOBAL G.A.P. 공인컨설턴트(Farm Assurer) 자격을 획득하고 미국 IOIA 국제유기심사원협회 리드 트레이너이며 세계 수많은 유기농 현장과 인증과정에 참여한 유병덕 이시도르 지속가능연구소장은 "국민이 건강하게 지속가능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민의 행복추구권에 해당하며 이는 국가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또한 "우리나라 유기농 정책은 이해와 접근방식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며 특히 식품안전에만 매몰돼 온 우리의 고정관념을 벗어나서 유기농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진정한 유기농이 무엇인지 통찰적으로 고찰해 적용하는 해법을 제시했다.
- 외국의 유기농과 우리나라 유기농 정책은 무엇이 다른가?"우리나라 친환경 농업 목적과 정의를 보면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산업이라고 정의돼 있다. 친환경과 유기농 목적이 식품안전인 것이다. '농약은 나쁜 것'이라고 강조만 한 부정적인 방식이다. 유럽은 농업생태계를 지속가능하게 가꾸고 유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정책을 진행한다. 나쁜 것을 없애자가 아니라 '좋은 것을 실천해서 살리고 확대하자'는 방식이다."
-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국제표준 코덱스 가이드라인(CAC GL 32)에 나와 있는 유기농의 정의는 생물 다양성, 생물학적 순환, 토양의 생물학적 활성화를 통해 농업생태계의 건강을 증진·강화하는 총체적 관리체계'라고 되어 있다. 농업선진국은 이 가이드라인을 지킨다. 우리나라는 국제표준을 지향한다고 하면서도 유해물질이 검출되지 않아야 한다는 식품안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오로지 검출 결과만으로 결정하며 정말 중요한 생산과정을 살피는 정책이 아닌 생산자만 강제하는 방식이 돼버린다. 심지어 양심 있는 생산자의 도덕성과 진실까지 매도되고 있다."
- 유해물질이 검출되지 않아야 하지 않나?"나쁜 것이 억제된, 잔류농약 중금속 방사능 환경호르몬 등이 안전기준 이하로 억제된 식품을 안전한 식품이라고 말한다. 약간량을 섭취하더라도 곧바로 질병이 생기지 않고 사람에게 즉시 위해를 가하지 않는 식품인 것. 지금까지는 식품안전이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상당 부분 식품안전이 보장되고 있다. 오히려 과도한 실정이다.
유해물질이 검출돼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유해물질 검출 결과만 가지고 판단한다면 어느 농가도 마음 편히 유기농업을 하기 어렵다. 생산자가 의도하지 않은 비의도적 혼입으로 유해물질이 검출돼도 정부는 생산자에게 징벌을 가한다. 심지어 원인 규명까지 생산자의 몫으로 떠안긴다. 생산자는 유해물질이 검출될까 봐 노심초사하고 그게 반복되면 유기농업의 의지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지난 시절 우리나라가 한때 엄청나게 농약을 뿌리고 산 것에 대해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
- 그렇다면 우리나라 유기농 인증방식을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나?"유기농을 이해하는 패러다임에 혁신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유기농 정책은 대증요법적이다. 환자에게 증상이 생기면 증상 억제에 초점을 맞추는 치료법을 적용하듯 유기농 정책도 유해물질 검출 결과만 가지고 논쟁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원인 해결적인 방책을 취하는 게 아니라 그 문제요인을 억제하고 검출 기준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외국은 피상적인 검사결과로 결정하지 않고 과정 중심이다. 생산 초기부터 모든 과정이 유기적인지, 생물 다양성을 살리며 생태계가 건강하게 지속할 수 있는 방식으로 농사를 했는지를 따진다. 그렇게 생물과 토양을 유기적으로 경작하고 관리하고 증진하면 필연적으로 유기농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식품안전에 촉각을 세우고 생산과정을 도외시하고 검출 여부만 따진다. 진짜 중요한 생산과정을 빠트린 인증은 우리가 사는 생태계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건강한 유기농을 지향한다고 보기 어렵다."
-. 유기농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WHO는 건강을 단순히 질병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 정신 관계가 평안하고 활력 있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렇게 건강은 종합적인 것이다. 유기식품은 성분 위험이 적으면서 종합적으로 건강을 제공하는 식품이다. 유기식품은 영양공급 측면도 있지만 분화된 성분 산출로만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종합적인 완성체다. 이게 유기식품의 가치다. 건강을 이해하는 관점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가 유기농 식품을 먹는 이유도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고 유기 생산물을 지향함으로써 건강한 생태계를 지속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다. 식품안전만이 유기농을 추구하는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 어떻게 바뀌는 게 가장 이상적인가?"국민은 건강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이는 헌법이 보장한 행복추구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GMO 식품 완전표시제를 주장하는 것도 내가 선택하는 먹거리가 무엇으로 돼 있는지 알고 먹을, 건강을 추구하는 권리인 것이다. 그런데 현행 제도는 NON-GMO 표시조차도 식품에 표시할 수 없다. 식품안전 함수는 동시에 존재한다. 나쁜 것을 억제해서 가치가 하락하는 것이 있고 좋은 것을 드러내서 가치가 상승하는 것이 있다. 부정적인 초점을 부각하기보다 긍정적인 방식을 장려해 건강하게 지속가능한 유기농을 확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