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산군도는 100개가 넘는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묵묵히 파도를 견뎌내고 있는 홍도의 촛대바위.
강제윤
한국에는 딱 하나의 섬 밖에 없습니다! 독도. 제주도를 논외로 치면 사회적 관심에서 가끔씩 그런 착각이 들 때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독도를 제외한 대다수의 섬들은 대체로 무관심의 영토에 속해 있습니다. 한국의 영해는 영토의 4배나 됩니다. 한국이 작다고 생각하지만 바다에서 보면 한국은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닙니다. 그 영해의 중심에 섬들이 있습니다. 남한에만 무려 4000여개, 그중 사람이 사는 섬은 470여개입니다. 북한의 섬 1300여개까지 합하면 한반도는 섬이 5천개가 넘는 섬 왕국입니다.
이 섬 왕국의 끝자락 독도가 국경의 섬인 것처럼 마라도와 격렬비열도, 거문도와 백도, 흑산군도와 가거도 등의 섬들도 모두 국경의 섬입니다. 그토록 중요한 섬들이지만 독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섬들은 영토의 전위로서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에서 이 국경의 섬들에 대한 특별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섬 환경운동가인 내가 흑산공항에 찬성하는 이유위원님들께서도 국경의 섬, 흑산도 때문에 요즘 고민이 많으시지요? 지난 20일, 국립공원관리공단 회의실에서 흑산공항 건설 허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국립공원위원회가 열렸을 때 나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결국 이번에도 허가 여부에 대한 결정이 안 났고 9월에 심의를 한 차례 더 한 뒤 결정하기로 했지요. 실상 흑산공항 문제는 그렇게 쉽게 결정할 사안이 아니란 이야기일 것입니다.
오랫동안 난개발, 막개발에 반대하는 섬 환경운동을 하고 있는 내가 그날은 공항 찬성 발언자로 참석했습니다. 나는 활주로 길이 1200m, 폭 30미터짜리 50인승 소형여객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소규모 공항인 흑산 공항 건설을 적극 찬성합니다.
흑산도에 소형 공항이 필요한 이유는 크게 네 가지 입니다. (1) 흑산공항은 차별 받아온 섬주민의 교통기본권을 보장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현 상황에서 소형 여객기는 흑산군도 섬 주민교통 불편 해소를 위한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입니다. (3) 다리나 해저터널 등보다 소형공항이 섬 환경보호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4) 국경 섬의 영토 주권을 지키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날은 발표시간이 5분밖에 주어지지 않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미처 다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다시 편지를 쓰게 됐습니다.
나는 30년 넘게 사회운동, 인권운동, 환경운동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섬 환경운동만을 해온 지도 20년이 넘었습니다. 33일 동안의 단식으로 보길도 댐 확장을 막아내 숲을 지켰고, 보길도의 부황천을 파헤치고 시멘트로 발라 직강화 하려는 시도를 막아냈습니다. 제주의 비양도 케이블카 반대운동을 함께해 무산 시켰습니다. 대명콘도에 섬 주민들의 자산인 폐교를 매각하려는 진도군과 맞서 관매도의 폐교도 지킨 바 있습니다.
또 작년에는 도로 공사로 사라질 뻔한 3백년 된 여서도 돌담들을 지켰고, 통영의 최고 대피항인 강구안에서 어선들 쫓아내고 유원지를 만들려는 개발 사업을 잠정 중단시켰습니다. 통영의 국가무형문화재인 추용호 장인의 150년 된 전통 공방과 세계적 음악가 윤이상 선생 생가 터가 도로 공사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을 지켜내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환경단체들도 잘 모르는 세계에 단 두 곳 뿐인 천연비행장이자 천연기념물391호인 백령도 사곶해변 살리기를 하고 있으며, 문화재청으로 하여금 15억 예산을 확보해 역학조사를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앞으로는 썩어가는 사곶해변을 되살리고 황무지로 버려진 땅을 갯벌로 환원시키기 위해 백령도 역간척 운동을 전개할 예정입니다.
흑산공항, 섬주민들의 교통 기본권 문제이처럼 누구보다 급진적인 환경운동을 하고 있는 내가 어째서 흑산공항은 찬성하게 됐을까요. 환경운동가들도 의아해 합니다. 그것은 흑산공항 건설이 환경문제인 동시에 차별 받고 소외 받아온 섬 주민들의 교통 기본권을 지키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라고 어찌 고뇌가 없겠습니까. 어째서 흑산도의 철새나 나무나 바위들은 소중하다 하지 않겠습니까. 섬이 원형 그대로 보존됐으면 하는 욕심 또한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섬도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 흑산도는 무인도가 아니라 유인도란 뜻입니다. 2천명이 넘는 주민들이 사는 섬입니다. 흑산도 인근의 섬에도 1만 명 넘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때는 흑산도 한 섬에만 2만 명이 넘게 살기도 했었습니다. 흑산도, 홍도를 여행하러 찾아가는 육지 사람들도 한해 30만 명이 넘습니다. 새들의 섬, 나무들의 섬인 동시에 사람들의 섬이기도 한 것이지요.
지금은 환경 이슈에서 여객기 안전 문제나 경제성 등이 주요 이슈로 옮겨갔지만 처음 환경단체들이 흑산공항을 반대한 이유는 이동하는 철새들이 잠깐 머물렀다 가는 서식지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철새들도 본래부터 흑산도를 통과하지는 않았습니다. 새만금 간척과 영암만, 고흥만 간척 등 수많은 간척 사업으로 갯벌들이 사라지자 근래 들어 철새들이 중간 경유지를 흑산도, 홍도, 어청도 등 섬으로 옮겨간 것입니다.
흑산도에는 그 철새들보다 사람들이 먼저 살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철새들의 섬이기 이전에 수천 년을 살아온 사람들의 섬인 셈이지요. 육지의 난개발로 철새들을 섬으로 몰아내 놓고 섬에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무책임하단 말씀입니다. 철새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대체 서식지를 만들어주고 철새와 공존하는 길을 찾는 것이 그리 잘못된 것일까요.
그동안 흑산공항 건설 논의 과정에서는 철새와 자연환경을 걱정하는 만큼 흑산도 주민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배려와 고민이 부족했다고 느껴집니다. 지구에서 사람의 지속적인 생존가능성이 위협받자 생긴 것이 환경운동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배제하고 철새나 나무들만 이야기 한다면 지구 환경의 가장 큰 위협 요인인 인간은 지구에서 멸종해 주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극단주의자가 아니고서야 누가 그러길 바라겠습니까. 그렇다면 철새나 나무들과 함께 섬사람들도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고민은 공존에서 시작돼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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