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빌리시에서 시그나기 가는 길시그나기 가는 길에 만난 조지아의 시골 마을은 대부분 쇠락하였다.
변영숙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조지아의 시골 마을들은 가난해 보였다. 정비되지 않은 길과 오래된 집들, 빛바랜 낡은 간판, 텅 빈 상점들 그리고 생기 없고 무표정하게 담벼락 아래 앉아 있는 사람들은 '죽은 도시'를 연상시켰다.
"나는 와인 안 마셔요. 와인 별로 안 좋아해요." 뜬금없이 택시기사가 말했다.
"정말요? 난 조지아 남자들은 모두 와인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요."
"아뇨. 다 와인을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난 와인은 안 마셔요. 이따금 맥주만 조금씩 마셔요.""저 사람들은 젊어서부터 와인이나 술을 많이 마셔서 저렇게 된 거예요." 그가 담벼락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술을 많이 마셔서, 늙어서 저렇게 건강도 잃고 무기력하게 살아요. 난 저렇게 되고 싶지 않아요."어려서부터 늘 주변에 술이 있고, 쉽게 술을 마실 수 있는 환경이라면 택시기사가 말한 부작용도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의 말은 조금 의외였다. 조지아와 와인을 따로 떼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와인은 조지아의 대명사 아닌가. 와인이 싫다는 조지아 남자를 만났으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그런데 정말로 의외였던 것은 술을 좋아하는 자국인을 경멸하는 듯한 택시기사의 태도였다. 그것은 어쩌면 가난과 게으름에 대한 경멸과 경계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조지아 남자= 포도주 애호가'라는 나의 잘못된 등식은 깨져버렸다.
조지아 와인의 심장부마을을 벗어나니 포도밭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로 양옆으로 포도밭이 끝없이 이어졌다. 시그나기, 크바렐리, 라꼬데히, 텔라비로 이어지는 조지아의 동부를 '와인루트'라 일컫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