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K-pop, 이민 2세라서 등의 갖가지 이유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과 김수진 선생님이 한장의 사진에 담겼다.
김수진
- 반면, 가장 힘들거나 실망했던 순간이 언제였나요? 그리고 브라질에 살아서 '이것만은 정말 별로다' 하는 건 어떤 게 있을까요?"제가 몸담고 있는 세종학당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입니다. 그래서 정규 언어 수업 외에도 한국 문화에 대해 알리는 일도 제 임무 중에 하나죠. 학생들은 방과 후 수업과 비슷한 개념으로 받아들이겠죠? 한번은 그 시간에 학생들과 다함께 김밥을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다른 친구들보다 일찍 만든 한 학생이 먼저 맛을 한 개 봤는지 갑자기 이렇게 외치더라구요.
'와, 한국 스시 진짜 맛있어요!' 스시라니. 제가 그렇게 한일 문화 차이를 가르쳤는데도 이런 해프닝이 종종 있어요. 일본 문화를 먼저 접하고 우리 문화를 배우느라 혼란스러운 건 이해해요. 그래도 오래 가르쳐 온 학생이 그러면 좀 힘 빠지고 속상하죠. 또 학생들 대부분이 나이도 어리고, 유럽 이민 2, 3세라 한국 사람들과는 다르게 식민 지배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아요. 그게 곧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에 대한 몰이해로 이어지고요. 그래서 제가 더 노력해야 하는 부분도 있을 거예요.
그리고 많이들 아시다시피 브라질도 내부의 사회 문제가 좀 많아요. 대표적인 게 바로 치안 문제죠. 저는 밤에 길거리를 걸어본 적이 한 손에 꼽을 정도예요. 퇴근 후에는 거의 우버 택시를 이용하고요. 그 외에도 파업을 자주해 교통이 불편할 때가 많고 국민들의 빈부격차도 많이 나는 편이에요. 심지어 제가 가르치는 교실 안에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니까요. 그래도 해가 갈수록 브라질 국민이 모두의 힘으로 나아질거라 믿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 중에 사실 브라질과 관계없이 제 개인적인 이야기도 있어요. 제 나이가 한국 나이로 이제 계란 한 판이에요. 주변 동료들은 모두 한국에서 자리도 잡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데 저만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가끔 씁쓸할 때가 있어요. 귀에 들리는 걸 막지는 못하니 상대적인 비교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곳으로 오기한 제 결정에 한번도 후회는 없었습니다."
-한국이나 한국어에 대한 브라질 현지 사람들에 대한 인식은 어떤 편인가요?"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일본과 굉장히 혼동을 많이 해요. 브라질에 한국 기업이나 K-pop 등의 대중 문화가 많이 진출하고 있지만, 이게 한국에서 온 것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실태입니다. 예를 들어 삼성이나 LG 등 세계적인 기업들의 이름은 잘 알지만 일본이나 중국에서 왔다고 생각해버리는거죠.
제 교실에는 태권도를 배우다 흥미가 생겨 온 학생들도 있어요. 도장에서 쓰는 '차렷'이나 '경례'같은 구령이 다 한국말이잖아요. 듣다보니 호기심이 생긴 거죠. 이런 학생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 고유의 전통 문화 보다는 K-pop이나 K-드라마 등의 한류 문화로 한국을 인식하는 어린 학생들이 거의 대부분이에요. 실제로도 한글을 떼자마자 이제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 가사를 읽을 수 있겠다며 수업을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친구들도 있고요.
세대 차이도 있는 것 같아요. 가끔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을 데리러 오신 학부모님들과 대화를 하는데 얼토당토 않은 질문들도 많이 들었어요. 아직도 남북이 총과 칼로 전쟁 중이냐느니, 브라질이 한국보다 안전하다고 느끼냐느니 기타 등등 많습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되어 좁아진 세상이라 하더라도 자기가 관심이 없으면 계속 모르는 것 같아요."
- 앞으로의 계획이나 포부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제 30대에 접어들었지만 제 미래에 대한 개인적인 계획은 아직 불분명한 상태예요. 현재 일하는 학교와의 계약이 끝나면 일단 한국에 돌아갈 것 같아요. 국내 대학원에서 다문화 교육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나라에서 우리말 교육을 하는 제 모습이 기대되기도 한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다른 나라에 다시 나가더라도 이번처럼 먼 곳으로 가지는 않을 것 같아요.(웃음) 한국과 가까워서 자주 방문할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요. 사실 부모님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시거든요."
- 수진 선생님처럼 나라 밖에서의 한국어 전도사를 지망하는 꿈나무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 있으신가요?"이 일은 큰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은 절대 아니에요. 단순히 외국에서 살 수 있다는 환상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니고요. 오히려 내가 한국을 대표해서 우리말과 문화를 가르친다는 사명감과 교사로서 프로정신을 갖는 게 중요해요. 분명히 좋은 점도 많이 있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들여다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나라 밖을 나서는 모든 여행자는 자국을 대표하는 대사와 같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그들의 말과 행동 자체가 곧 우리나라의 이미지가 될 수 있다는 뜻이 되겠다. 김수진 선생님은 이를 넘어 우리말과 문화를 머나 먼 땅에 전파하느라 그의 값진 청춘을 바치고 있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전역에는 김수진 선생님과 같은 셀 수 없이 많은 한국어 교사들이 맡은 바에 힘쓰고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의 위상 그리고 더 높아질 미래의 그것에는 그네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뒷받침되어 있을 것이다.
올 여름에 김수진 선생님을 보러 브라질에 방문한다는 그의 가족들도 그녀를 자랑스러워 하실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수진 선생님이 남은 파견 기간 동안에도 '파이팅'하기를 바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