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상징탑'(일명 '5.18 광주 빛의 타워')은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이 6.13 지방선거 때 내세운 공약들 중의 하나다. 관련 소식을 담은 기사 갈무리.
기사 갈무리
"강산이 세 번도 더 변했는데, 아직도 여기저기서 '촌티 경쟁'을 하는 것 같아요. 이곳 광주에도 높이가 무려 518m에 이르는 초대형 건물이 조만간 세워진다잖아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 계승하겠다는 취지라는데, 제가 보기엔 '바벨탑' 같은 건물과 5.18 정신은 그다지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요." 묵묵히 듣고만 있던 한 아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세종문화회관과 63빌딩에 서려있는 '촌스러운' 역사가, 최근 광주광역시에서 가장 핫한 이슈인 이른바 '5.18 상징 타워'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졌다. '5.18 상징 타워'(일명 '5.18 광주 빛의 타워')는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이 추진하고 있는 사업 중 하나로, 아이들도 대강의 쟁점을 알고 있다며 나름 큰 관심을 보였다.
찬반이 갈리긴 했지만, 반대가 훨씬 많았다. 아이들이 놀이공원을 즐겨 찾듯 쏠쏠한 관광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으리라는 것에는 양쪽 모두 대체로 수긍했지만, 이를 통해 5.18 정신이 확산 계승될 거라는 점에는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다. 침체된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5.18이라는 이름을 활용한 것일 뿐이라는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광주 곳곳에 5.18 상징물이 이렇게나 많은데 기실 지금도 광주엔 5.18을 상징하는 장소와 건물들이 많다. 옛 전남도청과 망월동 묘역 등 당시 역사의 현장이었던 곳은 5.18 사적지로 지정되어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시민수습위원회가 열렸던 한 천주교회는 5.18 기념성당으로 공식 명명되는 등 5.18을 기억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5.18이라는 숫자는 이미 광주와 '동의어'다.
시내 곳곳에 산재한 5.18 사적지를 잇는 시내버스의 노선 번호가 518번이다. 또, 제주의 올레 길을 벤치마킹한 '오월 길'이 만들어져 도심을 걷다보면 여기저기 안내 표지가 보인다. 숱한 시민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간 금남로의 일부 구간은 '5.18 민주로'가 됐고, 오늘날 광장 민주주의의 효시가 된 옛 전남도청 광장도 자연스럽게 '5.18 민주광장'으로 명명되었다.
2004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한 광주광역시청 건물에도 5.18이 스며들어 있다. 당시 무고한 시민들을 끌고 가 구타와 고문을 일삼았던 군사구역인 상무대가 인근 장성군으로 이전하면서 빈 터가 된 곳에 새 둥지를 틀었다. 언뜻 먼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배 모양의 건물인데, 현재 광주광역시 의회가 서로 마주보고 인사하듯 나란히 입주해 있다.
의회가 자리한 왼쪽 건물은 5층이고, 의회와 행정동을 잇는 중앙 홀은 통층 형식으로 단층이며, 오른쪽 행정동은 18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곧, 의회와 중앙 홀, 행정동의 층수를 연결하면 5.18이 되는 셈이다. 도시의 중심 건물이자 상징이 시청일진대, 시청사 하나를 신축하는 데에도 5.18 정신을 담고자 심혈을 기울인 것이다.
심지어 몇몇 시민들은 광주를 연고지로 하는 축구팀인 광주 FC와 야구팀인 기아 타이거즈에 5번과 18번을 영구 결번으로 정해 5.18 정신을 기리자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그것이 얼토당토 않는 황당한 주장은 아니다. 경남 창원을 연고지로 하는 NC 다이노스는 4.16 세월호 참사를 영원히 기억한다는 취지에서 4번과 16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한 사례가 있다.
현재 기아 타이거즈의 18번은 이미 영구 결번이다. '무등산 폭격기'라고 불렸던 선동열 현 국가대표 감독의 배번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왜 18번을 선택했는지 알 수 없지만, 80년대 침묵을 강요당한 채 야구로 한을 달래야 했던 광주 시민들과 함께하겠다는 뜻은 아니었을까. 참고로 그와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바람의 아들' 이종범 선수의 7번도 기아 타이거즈에선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숫자로 남았다.
아무튼 굳이 '5.18 상징 타워'를 세우지 않아도 광주엔 5.18 상징물이 차고도 넘친다. 외지인들이 5.18 정신을 배우기 위해 부러 그곳을 찾을 일도 없으려니와, 아이들 말마따나 민주, 인권, 평화라는 5.18 정신을 '바벨탑'에 구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외려 광주를 찾는 이들은 80년에서 시간이 멈춘 듯 흑백 필름 같은 5.18 사적지의 있는 그대로의 옛 모습에서 큰 감동과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