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가 혼자 일하는 상황에서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은 왜 며느리뿐일까. 결국 며느리가 아들 대신 움직여 그에게 '엄마'의 역할을 이어받아 주어야 하는 걸까?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중 한 장면.
MBC
MBC 프로그램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파일럿 편에서는, 시댁을 방문하기 전 옷차림을 신경 쓰는 새내기 며느리에게 남편이 별 걱정을 다한다는 듯이 친절하게 대꾸하는 장면이 나온 적이 있다.
"그냥 편하게 가." 어쩜 사람들 생각은 다 비슷비슷한지, 나도 결혼 초반에 시댁에 가는 것을 어색해하니 남편이 기가 막히게 똑같은 대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냥 편하게 다녀오면 되지. 엄마는 그런 거 신경 안 써."며느리가 시댁을 어렵게 생각하는 것은 개개인의 성격과 가정 환경에 따른 결과가 아니다. 시어머니가 특별히 엄한 분이라서, 며느리가 특별히 걱정이 많거나 예민한 성격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며느리와 시댁의 관계에는 사회적인 배경이 결코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게 깔려 있다.
사회초년생이라 직장 내 상하관계가 어렵게 느껴진다고 친구에게 하소연했다고 상상해 보자. 그 친구는 직장 생활을 해본 적이 없고, 물려받은 돈으로 평생 먹고 살 걱정이 없는 부잣집 출신이다. 그가 "회사라고 어려울 게 뭐 있어. 그냥 재밌게 논다고 생각하면서 일하면 되지"라고 조언한들 과연 공감이 갈까?
"왜 불편하게 생각해? 네가 예민한 거야."그 말은 무책임하다. '내가 사는 세상은 편하고 아무렇지도 않은데 네가 사는 세상은 불편해? 그건 네 세상이니까 알아서 잘 빠져 나와 봐. 나는 굳이 알고 싶지 않아.' 그런 말처럼 들린다.
'편하게 있어'라는 말은 물론 남편 입장에서의 배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아내가 불편한 이유를 남편이 같이 들여다 봐 주었으면 좋겠다. 사위가 처가에 가는 것과 며느리가 시댁에 가는 것이 왜 다를까. 그건 아내의 잘못도, 시어머니의 잘못도 아니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 각자가 살고 있는 세상이 다른 것만은 분명하다. 그걸 바로잡기 위해서는 며느리 혼자서 벗어나려고 고군분투하게 내버려두지 말고, 배우자 역시 조금이라도 공감하려 노력하고 함께 고민해 주었으면 좋겠다.
남편에게 편한 공간이라고 해서 아내에게도 편하리라는 법은 없다. 자신이 느끼는 상황과 아내가 느끼는 상황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적어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남편은 '가족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내 마음이 편해야 비로소 가족이 될 수 있다.
혼자서만 노력하고 긴장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가족이 되는 일은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적어도 아내가 시댁에 있는 동안에는 남편이 곁에서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며 아내가 속해 있는 세계를 함께 느끼고 움직여 주었으면 좋겠다.
고부관계는 결코 남편이 빠진 독립적인 관계일 수 없다. "여자들끼리 해결해"라며 슬그머니 귀찮은 일을 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내가 움직이면 엄마가 싫어해', '본가 왔으니까 대접받는 모습을 보여줘야지'라는 생각은 결국 '며느리'를 '대접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시스템의 근거가 된다.
며느리라는 이유로 가족이 되기 위해 홀로 애쓰는 것이 당연한 일은 아니다. 그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서로를 가장 깊게 이해하고 싶은 배우자라면 더더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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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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