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똑똑하고 아주 가끔 엉뚱한 뇌 이야기우리의 뇌를 과연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을까? 믿음직스러운 동료가 맞나? 혹은 간교하게 나를 구렁텅이 빠뜨리는 배신자가 아닐까? 이 책은 상황에 따라 나를 울고 울리는 뇌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의성
뇌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무겁다거나 자칫 어려운 이야기가 아닐까, 거부감이 드는 사람도 더러 있을 수 있겠다. 나 역시 이런 종류의 '이과'스러운 책은 각종 전문용어와 딱딱한 문체로 인해 읽기가 수월치 않기 때문에 멀리하는 경향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 내 정신의학 분야의 교수이자 연구원인 동시에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는 저자의 이력을 보며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이 들었다. 또한 책의 프롤로그부터 스탠드업 코미디언의 역량을 뽐내는 저자를 보며, 뇌과학이라는 딱딱한 분야를 보다 재미있게 풀어 이야기 해 줄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책은 하나 하나 우리가 평소에 궁금했을 법한 사례들을 들며, 우리가 막연히 생각했던 뇌와 실제 기능하는 뇌 사이의 간극을 좁혀준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며 저자의 문체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자칫 딱딱할 수도 있는 주제를 저자는 자신만의 재기발랄한 문체를 통해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간단히 말해 '읽는 맛'이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왜 사람들이 (혹은 자신이) 가끔씩 이상한 행동이나 엉뚱한 말을 해서 밤새 이불을 걷어차는 후회를 하게 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다 널 위해서야"라는 이유로 뇌가 얼마나 우리를 난처한 지경으로 몰고 가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엄청나게 똑똑하고 아주 가끔 엉뚱한 뇌 이야기> 중
앞서 언급한 바 있던, 앞일을 예견하며 언제 어디서고 '그럴 줄 알았어'를 시전하는 '재수 없는' 친구 얘기를 잠시 할까 한다. 대학생 시절 그 친구의 별명은 '원 모어 타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당시 유행했던 쥬얼리란 그룹의 히트송 '원 모어 타임'을 따다가 붙인 별명이었다). 늘상 한 번만 달라고, 이번 한 번만 사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그 친구 생각이 유독 났던 건, 그 친구가 썼던 행동양식이 철저하게 뇌과학적으로 입증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책에서 확인한 그 친구의 '원 모어 타임'은 이른바 '문간에 발 들여놓기' 기법이었다.
"친구가 와서 버스비가 없다고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고 치자. 여러분은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러고는 친구가 샌드위치랑 음료수를 좀 사먹어야겠다며 돈을 좀 더 달라고 한다. 여러분은 이를 또 승낙한다. 친구는 다시 술 몇 잔 하러 펍에 가는 게 어떠냐고 묻는다. 여러분은 승낙할 수밖에 없다.
'문간에 발 들여놓기'란 작은 부탁을 받아주게 되면 더 큰 부탁도 수용하게 된다는 뜻이다. 즉, 부탁하는 사람은 자신의 '발을 문간에 들여놓은 것'이다."
의식하지 못한 순간에도 우린 늘 뇌의 영향 하에 움직이고 행동한다. 어떻게 보면 내게 부담되는 일이 또 어떻게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조삼모사'라 하지 않나. 뇌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에 따라 될 일도 안 될 수 있고 되지 않을 일도 되게 만들 수 있는 것 아닐까. 책은 이처럼 우리 뇌가 상황과 바깥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미 잘 알려진 사람의 뇌와 그 인식에 대한 유명한 실험도 책에선 다시금 설명해 주고 있다.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 전범자들이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한 변명이라고는 그저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 전부였다. 소름끼치는 변명으로 치부될 수도 있었지만 뇌과학 실험을 통해 이는 변명이 아닌 진짜라는 게 밝혀졌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질문을 하게 한 뒤 만약 답이 틀리면 질문자는 대답한 사람에게 전기충격을 가해야 한다. 대답이 틀릴 때마다 전압을 점점 더 높이기로 한다. 여기에 질문자가 모르는 함정은 실제 전기충격은 가해지지 않았고 대답한 사람은 연기를 통해 고통스러운 소리를 크게 냈다는 점이다.
질문자들만 모르고 있었지만 이 실험은 사실 질문자들을 그 대상으로 하는 실험인 셈이었다. 대답한 사람이 고통을 호소하며 실험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할지라도 실험을 주도한 연구원들은 질문자들에게 이 실험을 중단해선 안 된다고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65%의 사람들이 이런 단순한 연구원들의 말만 듣고 계속해서 상대에게 고통의 강도를 높였다고 한다. 우리 뇌에 있는 의외의 허점 혹은 그 맹점에 대해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