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불 피우기경옥고를 만들때는 사흘 밤낮 불을 지펴야 한다, 원래 기록에는 나흘동안 중탕하라고 되어 있지만 일정을 단축했다
정덕재
경옥고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 이후에는 어떤 약재든 손쉬웠다. 몇 시간 동안 대추차를 끓이거나 겨울 초입에 쌍화탕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빠, 이러다가 건강원 차리는 거 아녀." 아들의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일까 생각을 했지만 그 만한 정성을 쏟기에는 체력 한계가 분명해 바로 포기했다.
따뜻한 인생의 화덕몸이 따뜻해야 건강에 좋다는 말을 듣고 목욕가운 안에 팬티만 입고 화덕 앞에 앉은 적이 있다. 속옷만 입은 바바리맨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겨울밤 따뜻한 불 앞에서 가운을 열고 불을 맞고 있으니 뜨거운 기운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화덕을 자주 이용하다 보면 길가에 떨어진 나무토막도 대수롭지 않게 보인다. 시골에서도 나무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 가지치기한 나무를 구하는 것 말고 따로 나무를 얻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 남의 산에 올라가 무턱대고 벌목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보이는 대로 나무토막 한두 개를 가져오는 건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한동안 승용차 트렁크에는 나무 조각들이 잔뜩 떨어져 있었다.
화덕을 완공한 것은 지난해 6월 10일. 화덕 만든 날을 표시하기 위해 시멘트 미장 위에 날짜를 못으로 새겨놓은 덕분에 기억한다. 어느새 1년이 지났다. 여러 음식 냄새를 풍기고 약재를 달이는 동안 화덕에는 그을음이 더욱 짙어졌다. 재가 나오면 밭에 뿌려주었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나무를 보면서 쉘 실버스타인의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떠오르기도 했다.
지난 1년간 화덕을 사용하면서 나무와 불의 관계를 자주 돌아보았다. 수시로 따뜻함에 대해 생각했다. 화려한 인생을 꿈꾸다가 쓰러져 간 희미한 불꽃을 떠올렸다. 활활 타다가 수그러드는 불의 생명을 통해 삶의 희로애락을 들춰보았다.
화덕 앞에 앉으면 따뜻한 밤풍경 사이로 많은 사연들이 스친다. 타는 장작을 보면서 소멸을 생각한다. 화덕은 흔적을 남기려는 욕망도 결국 한줌의 재가 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 뿐이다.
새털처럼 가벼운 한 인간이 무엇을 구워 먹을까 생각하는 건, 늘 그렇듯 소주 한잔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6월에는 파를 까맣게 굽는 이탈리아 요리의 레시피를 자주 찾아볼 것 같다. 그러면서 최불암의 농담 같은 웃음을 짓고 있을지도.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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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글쓰고 영상기획하고, 주로 대전 충남에서 지내고, 어쩌다 가끔 거시기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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