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립토포르티쿠스.로마시대의 비밀 지하통로가 어둠 속에서 끝도 없이 이어진다.
노시경
분명히 지도를 보며 크립토포르티쿠스 위치를 여러 번 확인하고 찾아갔는데도 나는 계속 같은 위치만 맴돌았다. GPS와 연결된 지도 속의 나의 위치는 분명히 크립토포르티쿠스 주변을 가리키고 있는데, 크립토포르티쿠스 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아를 시청사의 벽 앞에 계속 서 있었다.
핸드폰 지도 속의 크립토포르티쿠스는 계속 시청 부근을 가리키고 있었다. 크립토포르티쿠스는 어디에 숨어있는 것인가? 나는 결국 길 가던 나이 지긋한 신사에게 크립토포르티쿠스 위치가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크립토포르티쿠스 위치가 어디에요? 이 사진과 같이 지하에 있는 로마 유적지인데요. 분명 이 근처인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찾을 수가 없네요."
그는 나를 한번 힐끗 보더니 빙긋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이 골목길에서는 크립토포르티쿠스 찾기가 좀 힘들어요. 나를 따라와보세요. 여기 시청건물 보이죠? 이 시청 건물 지하에 있어요. 이쪽으로 와 보세요. 저기 1층에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가 보이죠?"놀랍게도 육중한 아를의 시청사 건물 아래에 크립토포르티쿠스가 있었다. 이 지하통로에 가기 위해서는 시청사 내부의 1층으로 들어와서 입장권을 사고 지하로 내려가야 했다. 로마의 지하통로 위에 근대 시청건물을 만들었는데도 두 구조물이 훼손되지 않고 여전히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2천년 넘는 역사의 지하회랑은 얼마나 튼튼하게 지어졌으면 지금도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을까?
크립토포르티쿠스는 마치 심연의 바다와 같이 어둠 속에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꽤 깊은 땅 속으로 계단은 이어지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이 지하구조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나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치형 지하통로의 일정한 거리마다 조명등이 켜져는 있었지만 땅 속은 불안하게 어두웠다. 어둠 속의 길을 혼자 걸으려니 긴장되었다. 어두운 공간 속에서 들리는 소리는 나의 발자국 소리 밖에 없었고,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면서 적잖은 공포를 느꼈다. 나는 내 앞에 무엇이 있는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계속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아무래도 땅속이다 보니 지상보다 훨씬 서늘한 공기가 지하공간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땅속 깊은 곳의 지하수로 인해 지하통로에는 습기가 가득 차 있었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져 고여 있는 곳도 있었다. 이 공간 안에는 아무 설명문도 없었고 아치형 지하공간만이 눈 앞으로 무한정 펼쳐지고 있었다. 중도에서 돌아갈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