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과 연대단체 참석자들이 지난 2014년 12월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의 고통을 알리기 위해 오체투지를 벌이며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려 했으나 경찰의 저지에 막혀 무산됐다.
유성호
그런 오체투지 행진을 촛불정부 하에서도 다시 해야 한다니, 다시 국회 앞에서 경찰에 막혀 엎드린 채로 날을 새워야 한다니, 때론 기운 빠지고 암담하다. 고공에 올라 간 노동자들 문제가 200여 일이 넘도록 아무런 진전이 없는 이 사회도 참 여전하다. 특별히 비교할 일은 아니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차에 몇 시간 방치만 해두어도 경찰에 동물학대로 신고가 들어가고, 주인에게 책임이 물어진다고 한다. 무슨 고양이나 강아지가 저 높은 고공에 고립 방치된 채 200일이 되었다 해도 정치 사회적으로 문제될 일이다.
사회적 갈등 해결을 위해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고 말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노사 문제에는 정치권이 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노사 문제에 개입하지 않기 위해 정부 여당이 앞장서 최저임금법과 노동법을 개악하는 것일까. 2200만 명의 국민이 정부 공식 통계 노동자로 살아가는 세상에서 도대체 일터의 안전과 평화, 평등과 민주주의를 위해 정치와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면 정부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어떤 일을 하겠다는 것일까. 노동부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것일까. 급기야 더 큰 사회적 사건이 되고, 물의와 갈등과 분쟁이 되면 그때야 나설 참인가.
근래 몇 가지 사건과 결정, 이야기들이 모두 노사 문제에 대한 정치의 개입이 어떤 것인가를 확인시켜준다. 최저임금법 개악은 기가 막히고 분노스럽다. 박근혜가 하려던 핵심 사업 중 하나가 노동법 전면 개악이었으나 끝내 못했다. 전면 개악이 어려울 듯하자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등을 사측이 손쉽게 할 수 있게 기껏 시행령을 밀어부친 정도였다. 그런 노동법 개악을 촛불정부가 하다니, 착잡하다. 박근혜의 노동법 개악은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막아주지 않았다.
며칠 전 만기 출소한 한상균 민주노총 집행부의 총파업과 이어진 민중총궐기 등이 박근혜의 독주를 막았다. 같은 시기 청계광장 농성에 이어, 대통령 선거 투개표수인 1만 3천여 곳에 버금가는 전국 1만 개소 '노동법 개악저지 을들의 국민투표소' 일을 하던 때도 생각난다. 미안하지만 당시 민주당이 박근혜를 막기 위해 어떤 결사와 총력을 다했는지는 잘 기억에 없다. 간간히 을지로위원회 사람들을 보게 될 뿐, 당시 보수 여당과 다를 바 없이 덩달아 유들유들하고 논리적이고 말이 번지르하고 청산유수고 미끈미끈하던 그들을 민주주의의 거리와 광장에서 못 본지 한참 되었던 때다.
결국 위기를 느낀 노동자민중 시민들이 촛불항쟁으로 바로잡아놓은 세상이다. 그래놨더니 적폐청산 대상 당들과 손잡고 속전속결로 노동법 개악이라니 황당하다. 다수 의석이 없어 그렇다라는 핑계였다가 다수당 만들어주니 보수도 끌고 가야 한다고 스스로 보수가 되는 이들. 양의 탈을 쓴 하이에나나 카멜레온과 무엇이 다른가. 당신들에 의해 우리 노동자들과 민중, 평범한 시민들은 다시 현실과 정치를 모르는 '개돼지'들로 취급받는 더러운 기분이라는 것을 아는가. 아직도 촛불항쟁은 끝나지 않았고, 당신들이 그 적폐청산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까먹었는가.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정부는 필연적으로 노자 문제를 핵심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는 기본 상식을 '노사 문제에 대한 불개입과 중립의 정치'라는 오래된 사기로 넘어서려는 것인가.
박근혜 시절 대법원의 노동계 블랙리스트 실행 가담 진상조사 결과 발표도 있었다. 박근혜 청와대에 충성하고 사법부의 정치적 이익을 챙기고, 자본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해 판결을 거래했다는 의혹이었다. 통진당 해산, 과거사 진상규명, 전교조 법외노조화, 그리고 쌍용차와 콜트콜텍, KTX 해고 승무원, 갑을오토텍 사건이 대법원에 의해 기획 판결됐을 가능성이 드러났다.
그 영향은 작지 않았다. KTX 해고 승무원 판결은 삼성전자, LG, SK 등에서 일하는 모든 하도급 노동자들의 원청 사용자성을 부정하는 판례로 쓰였고, '미래에 올 경영상의 위기에도 정리해고가 합법'이라는 콜트콜텍 해고자 판결은 그간 형식적으로나마 존재하던 '명백한 경영상의 위기'라는 정리해고 요건을 무너뜨리고 모든 노동자들을 손쉽게 정리해고할 수 있는 도깨비방망이 판례가 되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논란의 당사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1일 기자들 앞에 서서 재판에 간섭하지 않았으며, 판사에게 불이익을 준 적도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급기야 당사자들이 긴급하게 나서서 양승태 등에 대한 구속 수사와 정보 공개, 재심청구를 하게 되었다. 현행 대법원의 진실규명 용기에는 감사와 박수를, 그러나 미진함에는 강력한 규탄과 비판이 불가피하다. 0.1%의 부당한 외압이라도 존재했다면 그것은 최소한의 '법치'마저 부정한 '불법 판결'로 규정되어야 하고, 해당 법관들에게는 더 엄중한 책임과 처벌, 그리고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사과와 관련 판결들의 즉각 무효화와 재심 등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