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사법농단 피해자'들이 지난 5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동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고발하며 구속과 강제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이희훈
"대법원이 특정 의도를 가지고서 위와 같은 결정을 하였거나 아니면 그런 의도를 가진 누군가의 의사에 따라 위와 같은 결정을 하였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2015년 6월 3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논평 중)
'양승태 대법원'이 청와대와의 상고법원 설치 협상카드로 여긴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정지' 재판은 실제로도 석연치 않았다. '재판 뒷거래' 의혹은 이미 3년 전부터 나왔다.
그 시작은 2013년 10월 24일 오후 1시 57분, 고용노동부가 전교조 사무실로 팩스 한통을 보내면서부터다. '노조 아님'을 통보하는 공문 두장이었다. 해직자 9명이 노조에 소속된 점을 시정하라고 했으나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전체 조합원(6만여 명)의 0.015%에 불과한 숫자를 문제 삼아 15년 동안 존재했던 노동조합의 법적 지위를 박탈한 것이다. 취임 전부터 공공연하게 반감을 드러내던 박근혜 정부의 '전교조 죽이기'라고 조합원들은 받아들였다.
그 뒤에 벌어진 일들전교조는 즉각 법원에 판단을 요청했다. 그렇게 시작된 법정 싸움은 크게 두 갈래였다. 고용노동부의 조치가 합당한지 판단해달라는 '법외노조 통보 취소 소송'과 이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법외노조 집행을 미뤄달라는 가처분 소송이었다. 둘은 동시에 진행됐다.
먼저 판단이 나온 건 가처분이었다. 그해 11월 13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판사 반정우)는 1심 판단이 나올 때까지 법외노조 통보 효력을 중단하라고 결정한다. 전교조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당장 집행할 경우 전교조는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지만, 집행을 중단해도 공공복리에는 중대한 영향이 없다는 게 핵심 이유였다.
그러나 본안 소송에서는 전교조가 패했다. 이듬해 6월 19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는 고용노동부의 '노조 아님' 통보가 정당하다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잠시나마 '법내노조'였던 전교조는 다시 법외노조로 돌아갔다. 불복한 노조는 즉시 항소했고, 1심 때처럼 통보 효력을 멈춰달라는 가처분 신청도 낸다.
비슷한 시기 청와대에서도 1심 소송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후에 공개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비망록은 당시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2014.6.15.(일) "6/19 전교조 재판 중요", "승소시 강력한 집행"
정부는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다. 2014년 9월 19일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부장판사 민중기)가 전교조가 신청한 가처분을 인용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에 불복, '양승태 대법원'에 다시 한 번 판단을 맡긴다. 직권으로 노조 설립을 취소해놓고도 실제로 이행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정부로서는 약이 오를대로 오르는 일이었다.
당시 대법원은 이런 상황을 호재로 여긴 듯하다. 약 두 달 뒤 법원행정처는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라는 대외비 보고서를 작성한다. 여기엔 자신들의 숙원사업 실현을 위해 이 사건의 방향과 결정 시점을 청와대와의 협상카드로 삼자는 노골적인 주장이 담겼다. "BH는 크게 불만을 표시하였다는 후문"이라고 전한 뒤 대법원이 결과를 뒤집어 "서로 윈윈(Win-Win)" 하자는 내용이다. 이듬해 작성된 보고서에도 이 재판은 "사법부가 주도권을 준 사안"으로 꼽혔다.
뒤집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