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웅진지식하우스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는 생전에 선생이 조각조각 남긴 글들을 모아 글쓰기, 번역, 언어 사용 등 주제를 나누어 정리한 책이다. 선생의 목소리를 통해 창작 뒤에 가려져 있는 번역의 의미와 역할 그리고 어려움을 알 수 있으며, 우리말과 각종 언어에 대한 선생의 깊이 있는 사유와 신념을 느낄 수 있다.
번역은 그저 창작된 문장을 그에 걸맞은 단어와 문장으로 전환하는 일이라 여긴 나 같은 독자라면 이윤기 선생이 말하는 번역의 과정에 놀랄 것이다. 텍스트의 이해를 시작으로 우리말과 싸워나간다. 먼저 사전과의 싸움이라 한다. 그렇다고 사전 속 화석화한 개념만을 좇을 수는 없고 살아있는 말을 찾아내야 한다.
이런 단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일이 두 번째다. 간단하게 정리하여 가독성을 높여야 한다. 다음으로 원문 뒤에 숨어 있는, 푹 익은 우리말(숙어)를 찾아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텍스트의 문장과 번역 문장의 무게를 천칭에 얹고 달아보는 일까지가 번역가의 몫이다. 선생은 이를 간단히 이렇게 설명한다.
"먼저 원문을 해체하는 일입니다. 그다음은, 해체한 원문에 대응하는 역어를 찾아내는 일입니다. 우리말 문장이 짜이면 이제 이걸 천칭에다 다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원문의 말결(뉘앙스)은, 역문의 뉘앙스와 동일한가? 동등한가? 등가를 보증할 수 있는가? 정확하게 대응하는가?"(p.133)
모든 것은 창조로 시작되지만 한 문화권을 벗어나 보편성을 얻고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번역되어야 하므로 그는 '모든 것은 번역으로부터 시작된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꼭 선생의 생각만은 아니다.
프랑스 번역가 발레리 라르보, 문학평론가 류신도 같은 내용의 말을 했다하니 이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번역의 역할이겠다. 선생은 당신의 말대로 '번역이나 하는 사람'이 아니라 '번역까지 하는 사람'인 것이다.
선생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번역가지만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자신의 오류에 대해 솔직한 태도를 보인다. 1986년 출간된 <장미의 이름>은 많은 찬사를 받았지만 오역과 졸문으로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다가 다시 번역하기도 했다.
철학 전공자 강유원 박사의 지적을 받은 부분은 모두 검토하고 반영하며 자신에게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 번역 문화에는 다행한 일이라고 말한다.
번역가는 우리말을 잘하기보다 외국어를 잘하기에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지만 책을 읽다보니 큰 착각임을 알 수 있었다. 올바르게 표현하기 위해 선생은 끊임없이 우리말을 공부하고 언어의 흐름을 관찰한다.
우리말을 아끼면서도 다른 나라 말에 어떠한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자신의 자녀들을 통해 드러내기도 한다. 경상도 출신으로 지방어에 대한 생각도 밝힌다. 그는 번역가이면서 언어학자였다.
그는 언어에 천착했지만, 우리는 그의 번역을 통해 작품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번역가이면서 선구자였다. 나는 선생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평생 책을 곁에 두며 읽고 고민하며 살고 싶다. 우리 아이들은 나만큼 늦지 않아 이런 마음을 품는 사람이 되길 꿈꿔본다.
말하자면 '소설 전집'이 장차 무슨 짓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준 책이었다면 '전기 전집'은 장차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준 책이었던 셈이다. 내가 한 권도 빠뜨리지 않고 읽고 또 읽은 이 200권의 책에서 받았던 인상 중 비교적 강렬했던 것은 '전기 전집'쪽이었던 것 같다. 그 까닭은, 당시에는 그것을 설명할 수 없었지만, '전기 전집'이 문학의 근원적인 문제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p.177).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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