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칠헥실메톡시신나메이트(옥티녹세이트)와 벤조페논-3(옥시벤존) 성분이 든 자외선차단제를 바른 후 바다에 들어가면 성분이 물에 씻겨나가 산호와 어류에 심각한 피해를 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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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던 무렵 나도 말갛던 20대를 지나 어느새 30대가 되었다. 거울을 보는데 불현듯 기미, 주근깨, 색소침착 등이 보이드라. 이러다 나이 마흔도 안 돼 검버섯이 내 얼굴에 지도를 그릴 판이었다. 주변을 관찰해보니 얼굴에 '깨' 하나 없이 '도자기' 피부를 지닌 사람들은 죄다 햇볕 알레르기 등을 이유로 직사광선을 쬐지 않았다. 나와 절반의 유전자가 동일한 우리 엄마는 양산을 꼭 쓰시는데, 할머니 나이에도 나보다 잡티가 더 적었다.
무작정 '서양사람' 따라하는 서양 사대주의가 불러온 피부 파탄! 프락셀이니, 한방 침이니 피부과 갈 돈도 없으면서 어쩌자고. 그때부터 몇 년 동안 자외선차단제, 양산, 모자, 긴팔 등으로 햇볕을 꽁꽁 차단하기 시작했다. 내 피부의 '햇볕정책'은 처참히 폐기됐다. 그러나 뒤늦게 햇볕 좀 가린다고 백옥 같은 피부가 될 리 없고, 자전거 출퇴근을 하다보니 가리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너무 덥고 답답하고 갑갑해 죽겠드라. 게다가 간지는 '대폭망'(패션 테러리스트'입니다만).
결국 문재인 정부가 들어설 무렵 내 피부의 '햇볕정책'도 변경됐다. 이제 나는 자외선이 강한 5~9월에만 자외선차단제를 바르며, 이때도 장마 때나 비 오거나 흐린 날에는 바르지 않는다. 피부과 의사들, 화장품 회사들은 사계절 내내, 실내에서도 자외선차단제를 바르라지만, 멜라닌이 적은 백인도 아니고 일부러 선탠을 할 것도 아니라서 말이다.
갈색, 흑색 색소를 띠어 피부색을 결정하는 멜라닌은 그 자체로 자외선을 차단하는 기능을 한다. 이제 나는 봄, 가을, 겨울에는 충분히 햇빛을 쐬며 피부가 비타민D를 합성하도록 장려한다. 비타민D는 신체에 가장 중요하고도 부족한 성분인데, 현재 우리나라 인구의 90%가 비타민D 부족이다. 이런 온갖 논리를 들이대며 깨끗하고 젊은 피부보다는 건강하고 활동적이고 편하게, 나답게 잘 늙어가기로 했다(실은 '간지' 때문). 어차피 나는 젊을 때도 미모보다는 간지였어.
자외선차단제 성분이 산호를 죽인다고?!그리고 여름이 코앞에 닥친 지금, 자외선차단제를 장만하려는 찰나 하와이에서 산호초 보호를 위해 2가지 성분이 들어간 자외선차단제 판매를 금지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금지성분은 에칠헥실메톡시신나메이트(옥티녹세이트)와 벤조페논-3(옥시벤존)라는 자외선 차단성분이다.
현재 화장품 검색 앱인 '화해'에 등록된 2,098개의 선케어 제품 중 에칠헥실메톡시신나메이트가 포함된 자외선차단제는 2098개로, 약 70%를 차지한다. 반면 벤조페논-3은 단 69개(2.3%) 제품에 포함돼 있다.
미국의 비영리단체 EWG(Environmental Working Group)는 화장품 성분의 위험도에 따라 1~10점으로 성분을 평가한다. 1~2점은 안전, 3~6점은 중간, 7~10점은 위험하다는 의미다. 에칠헥실메톡시신나메이트는 EWG 위해도 점수 '6점'으로 중간 정도의 유해성을 보이지만, 호르몬 교란 가능성이 있고 동물실험에서 갑상선 호르몬을 감소시켰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벤조페논-3는 EWG의 위해도 점수 '8점'으로 유해성이 높으며, 알레르기를 유발하고 호흡기, 소화기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이렇게 이들 성분은 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지만, 해양 생태계에는 크나큰 악영향을 미친다. 이들 성분이 든 자외선차단제를 바른 후 바다에 들어가면 성분이 물에 씻겨나가 산호와 어류에 심각한 피해를 준단다.
[참고기사 :
선크림 그렇게 바르다가 산호초 다 죽어요]
나는 '신기한 동물도감'을 읽는 어린이처럼 산호가 암석이나 식물이 아니라 동물이라는 사실을 이 기사를 보면서 처음 알게 됐다. 산호가 곤충을 잡아먹는 식물처럼 가만히 있다 촉수를 뻗어 바다의 작은 생물들을 섭취하는구나! 그 살아있는 산호에 아주 적은 양의 벤조페논-3만 닿아도 백화현상이 일어나고 디엔에이(DNA)가 손상된다. 또한 '환경호르몬' 작용을 하여 바다 생물들의 성별 교란, 생식 이상, 기형 등을 일으킨다.
하와이처럼 사람이 많은 바닷가 산호들은 정자와 난자를 생산하지 못해 번식하지 못하는 반면, 인적인 드문 바닷가의 산호는 정상적인 생식 활동을 한다. 한편 에칠헥실메톡시신나메이트는 산호 체내에 있는 바이러스를 활성화시켜 바이러스의 작용으로 산호를 죽게 한다.
지구 표면의 70%를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바닷물에 잠시 자외선차단제를 바른 몸을 담군다고 무슨 대수랴, 하는 변명도 소용없다. <환경호르몬의 습격>에 따르면 호르몬은 1ppb(10억분의 1), 1ppt(1조분의 1)라는 아주 적은 양만 있어도 세포의 활동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1ppb는 감자칩 1톤 속에 들어있는 소금 한 알갱이와 같은 양이다. 위 기사에 따르면 올림픽경기장 규격의 수영장 6.5개 양의 물(16,250톤)에 단 한 방울의 벤조페논-3라도 들어있으면 산호가 영향을 받는데, 세계적으로 해마다 1만4천여 톤의 자외선 차단제 성분이 산호초로 흘러 들어간다고 한다. 오호 통재라.
그래서 내 몸에도, 바다에도 건강한 자외선차단제를 선택하기 위해 방법을 강구해보았다. 천천히 따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