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1〉 술병을 든 신라 여인, 〈사진2〉 미인도, 〈사진3〉 밀로의 비너스〈미인도(美人圖)〉(비단에 채색. 114.2×45.7cm. 간송미술관),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기원전 2세기에서 1세기 초 그리스 말기의 비너스 상. 대리석. 높이 204cm. 프랑스 파리 루브르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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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눈을 하고 히죽 웃고 있는 신라 여인상
위 사진에서 가장 왼쪽 〈사진1〉은 흔히 '신라 여인상'으로 알려진 흙인형이다. 이 여인상 또한 시신과 함께 묻은 껴묻거리다. 오른손에는 술병을 들고, 왼손으로는 입을 가리고 있다. 실눈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히죽 웃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겉에 입은 옷을 표의(表衣)라 하는데, 위아래가 하나로 이어진 원피스 같은 옷이다. 통일신라 시대 여자들 옷은 소매가 길어 웬만해서는 손을 볼 수 없었다. 이 여인상의 표의도 마찬가지다. 이는 당시 여자들이 손끝을 내보이는 것을 조심했기 때문이다. 이런 풍습은 고려와 조선 시대까지 이어져 여자들은 바깥나들이를 할 때 반드시 한삼(汗衫)을 저고리 위에 걸쳐 손을 가렸다.
표의 아랫단을 보면 발끝이 살짝 보인다. 그런데 신코가 좀 있다. 이로 보아 당시 여자들은 신코가 있는 신발을 신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인물상을 볼 때는 똑같은 자세로 서서 그 몸짓 그대로 해 보는 것이 감상 포인트의 첫걸음이다. 두 발이 왼쪽으로 나와 있다. 그러니까 이 여인상은 왼쪽으로 70도 정도 서 있는 상태에서 몸통을 오른쪽으로 살짝 틀어 앞을 보고 있는 것이다.
치맛단 아래로 내보이는 발이 없었다면
〈사진2〉는 조선 후기 혜원(蕙園) 신윤복(1758~?)이 그린 〈미인도〉이다. 조선 후기 화류계의 한 기생이 고단한 하루 일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와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한다. 여인은 우선 치마끈 매듭을 풀어 답답한 배를 숨쉬기 편하게 한 다음 저고리를 벗으려고 옷고름을 풀고 있다. 눈을 아래로 해서 치마 밑단을 보면, 왼 버선발을 살짝 내놓았다. 만약 이 왼 버선발을 안 그렸다면 이 그림 아랫부분은 그야말로 펑퍼짐한 치마뿐이었을 것이다. 이 여인의 무게중심은 오른발이 분명하지만 그림에서는 이 왼 버선발이 여인네 몸의 중심을 딱 잡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