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권우성
[기사 수정: 5월 24일 오후 8시 24분]"법무부는 아까 태아가 말이 없다고 했지만, 그동안 여성의 목소리도 없었습니다."
현직 산부인과 의사가 헌법재판소 공개 변론에 나와 법무부를 비판했다. 전날 법무부가 변론요지서에 임신중절을 선택하는 여성을 '성교는 하되 그에 따른 결과인 임신 및 출산은 원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적어냈다는 보도가 나온 지 하루 만이다.
24일 오후 헌재 대심판정.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의 위헌 여부를 가리기 위한 헌법소원의 공개변론이 열렸다. 공개변론은 낙태 시술을 한 산부인과 의사 정아무개씨가 낙태죄로 재판을 받다 낙태를 한 여성(269조 1항)과 수술을 한 의료인에 대해 처벌하는 (270조 1항) 형법 조항에 관해 헌법소원을 제기해 이뤄졌다.
이날 변론엔 산부인과 전문의인 고경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사와 정현미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각각 청구인 쪽, 법무부 쪽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법무부 "태아 나약한 존재" 주장하자, "여성 입장도 다르지 않다"며 일침고 이사는 "산부인과 전문의로 제 의견을 개진하려 한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여성은 낙태가 범죄화되고 사회적으로 살인이라는 낙인으로 소외되고 위축돼왔다. 그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태아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며 "의사 입장에서 '안전한 낙태'로 논의 중심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법무부가 변론 초반에 "태아는 자기 자신을 지킬 힘이 없고, 우릴 향해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굉장히 나약한 존재다. 태아는 단지 심장 소리로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할 따름"이라고 주장하자 이를 비판한 것이다.
고 이사는 "여러분은 의료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하는 것 같아 말씀드린다"며 얘기를 꺼냈다.
"우린 낙태를 한다고 하는 산부인과는 없다. 그럼 여성들이 낙태원을 찾아 헤매는 사이 시간이 지체돼 임신 주 수가 늘어난다. 자기가 왜 낙태를 해야 하는지 절실한 이유를 소명해야 하고, 수치심 싸움을 감내해야 한다… 의사는 비밀유지를 조건으로 하며 현금거래를 하고 의무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배우자나 남자친구의 동의를 요건으로 한다. 이들이 (의사를) 추후 형사고발할까봐 그걸 방지하려는 요식행위다."그는 "낙태죄 조항을 폐지하고, 논의 패러다임을 바꿔 모체, 여성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새로운 법리로 재정비하길 제안한다"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법무부 참고인 "저도 이쪽 참고인으로 선정돼 놀랐다"법무부 쪽 참고인으로 나온 정 교수 또한 낙태죄 자체는 위헌이 아니지만, 임신 12주를 기준으로 낙태 허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청구인 쪽의 예비 청구 의견과 같았다.
정 교수는 "낙태죄 위헌여부는 우리 현실을 모른 채 탁상공론할 문제가 아니다. 낙태 현실 전반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며 "낙태죄 규정은 위헌이 아니지만, 출산이냐 낙태냐는 문제는 제3자나 국가가 강요할 수 없다. 모자보건법 14조에서 윤리적 적용 사유를 조금 더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심인 조용호 재판관이 "청구인 쪽 참고인과 비슷한 진술을 해서 놀랐다"며 웃자, 그는 "저도 이해관계인 측(법무부) 참고인으로 선정돼 놀랐다. 소신은 굽힐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이해관계인이 (낙태죄 처벌 조항이) 위헌은 아니지만, 개선할 점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데 그 부분은 저도 마찬가지"라고 답했다.
"낙태죄 처벌에 남성 포함되지 않는 건 병역 의무와 같은 이유"법무부 측은 합헌을 주장했다. 법무부는 "태아는 어머니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인격체로 성장할 가능성이 커 태아에게도 생명권의 주체성이 부여된다"며 "태아의 생명보호는 매우 중요한 공익으로 낙태의 급격한 증가를 막기 위해선 형사처벌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또, "현재도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엔 모자보건법에 따라 예외적 낙태 시술이 가능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