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7호 법정 들어온 이명박110억원대 뇌물수수와 350억원대 다스 횡령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417법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는 "공소사실을 보면 사실과 너무 (다르다), 검찰 자신도 아마 속으로 인정할 거다, 무리한 기소다"라며 준비해온 종이를 꺼내 읽었다.
이 전 대통령은 "제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다스"라며 다스 관련 혐의를 부인하고 나섰다. 그는 "1985년 제 형님과 회사를 만들어 현대차 부품에 참여했다. 저로서는 친척이 관계회사 차리는 게 비난 염려가 있어 말렸지만, 정세영 현대자동차 회장과 정주영 회장도 괜찮다 해서 했다"며 "그 후 30년간 어떤 다툼도 없었는데 국가가 개입하는 게 정당한가 의문이 든다"고 주장했다.
감정에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저 역시 전쟁의 아픔 속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났다. 학교에 가지 못해 거리에서 행상하던 시절, 어머니는 늘 저에게 '지금 어렵지만 참고 견디면 반드시 좋은 날 올 거다, 잘 되면 너처럼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울먹였다.
또 "제 자신이 부정한 돈을 받지 않고, 실무선에서도 극도로 경계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검찰 수사를 했어도 불법 자금은 없었다"며 "그런 저에게 사면을 대가로 삼성의 뇌물을 받았다는 공소사실이 충격이고 모욕"이라고 강조했다.
이 전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남북 화해를 언급하며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그는 "남북 간 진정한 화해·협력·통일의 시대를 열어가는 건 시대적 요구이자 소명"이라며 "우리 사회가 먼저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화합하는 것이 먼저 전제가 돼야 한다. 바라건대 이번 재판 결과로 사법의 공정성을 국제에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같은 날 같은 법정에서 유영하 변호사 옆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박 전 대통령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다스 횡령부터 삼성 소송비 대납까지, 16가지 혐의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현재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삼성 다스 소송비 대납, 비자금 횡령 등 16개 혐의를 받고 있고, 여기에 적용되는 죄명만 뇌물수수, 국고손실 등 7가지다. 뇌물 혐의만 인정돼도 최소 징역 10년 이상에 무기징역(뇌물액 1억 이상)까지 선고할 수 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다스 수사팀을 꾸린 뒤 본격적으로 MB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이 다스 본사와 영포빌딩 등을 압수수색하고, 'MB 금고지기'로 불리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 측근들의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지난 1월 이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연 뒤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며 직접 반발에 나섰다.
그러나 다스 횡령으로 시작했던 의혹이 삼성 소송비 대납으로 커지면서 이 전 대통령의 입지는 좁아졌다. 지난 3월 14일 이 전 대통령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됐고, 국정원 특수활동비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은 같은 달 19일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이 전 대통령은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지 않았다. 법원은 22일 밤 영장을 발부했고, 자택에서 대기하던 그는 양복 차림으로 나와 측근들에 악수를 건넨 뒤 서울 동부구치소에 수감됐다.
이후 검찰은 여러 차례 옥중조사를 시도했으나 이 전 대통령은 공정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거부했다. 대신 미리 준비한 성명서를 통해 "다스의 주식을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가족 기업이기 때문에 경영상 조언을 한 것은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검찰 증거는 동의하지만 다 거짓말"... MB 전략은 통할까보이콧으로 일관하던 이 전 대통령은 재판에 들어가면서 전략을 바꿨다. 이 전 대통령 측은 검찰이 제출한 모든 증거를 재판에 사용하는 데 동의하겠다고 밝혔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피고인이 검찰 증거를 모두 동의하는 건 흔치 않은 경우다.
변호인단은 이 전 대통령의 '금도'라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대부분 증인이 같이 일을 해왔던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을 법정에 불러 추궁하는 것은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금도가 아닌 것 같다, 객관적 물증과 법리로 싸워달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 전 대통령 측이 참고인의 조서 등을 증거로 사용하는 데 동의하지 않을 경우 관계자들이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야 한다. 부동의된 증거가 효력을 갖기 위해선 증인신문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이 전 대통령의 이해타산이라는 분석이 있다.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 등 측근들이 이미 등을 돌렸기 때문에 이들을 증인으로 법정에 부른다고 해도 여론의 관심이 집중될 뿐 아니라 재판부의 유죄 심증만 굳히는 불리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또 국정원 댓글 사건 등 다른 혐의로 추가 기소되기 전에 신속하게 이번 재판을 끝내놔야 한다는 계산일 수 있다.
실제 이 전 대통령은 계속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증거 사용에 동의했을 뿐 내용에는 동의하지 않고 있다. 이날도 이 전 대통령은 "증인 대부분이 저와 함께 근무한 사람들이 많다. 어떤 이유로 (수사기관에서) 사실과 달리 말했는지 모르지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며 "재판부가 검찰의 무리한 자료를 검토해줄 것이란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