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역 앞에서 한 참가자가 다른 참가자들에게 묘역 설명을 진행하고 있다
신민주
얼굴을 보일 수 없었던 역사광주의 항쟁은 '광주 정신'이라는 표어 속에서 새롭게 정의되었다. '광주 정신'의 표어는 많은 것을 함의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해방 광주의 이야기는 큰 부분을 차지한다. 공동체가 사라진 시대 속에서 해방 광주의 시기는 우리에게 위대한 기억으로 남았다. 광장에 부분으로 존재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들의 모습과, 부분으로 광장에 나와 서로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었던 시기가 해방광주의 시기로 기억되었다. 광장에서의 평등 이외에, 삶의 전 영역에서의 평등과 인간으로서의 서로를 기억할 수 있었던 순간이 해방광주 시기였다.
그럼에도 자신의 얼굴을 나타낼 수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가 38년 만에 수면으로 떠올랐다. '광주 미투'로 불리는 5.18 당시의 성폭력 사건들에 대한 폭로들이 연일 기사 1면을 차지했다. 광주 정신이 추앙받는 이 시대에서도 어떠한 누구는 자신의 경험을 80년 광주 시기의 경험으로 말하지 못했고, 38년 동안의 긴 침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광주 정신이 다만 불의에 항거한 투쟁만이 아닌 삶의 전 영역에서의 평등과 결사를 만드는 것일 때, 이번 폭로는 우리에게 중요한 말들로 남아야할 것이다.
위대한 역사적 사건으로 우리가 만들어낸 민주주의가 광장 속에서만 부르짖어지는 비일상적 영역에 국한될 때 우리의 일상과 민주주의는 불행한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정권 교체를 통한 완전한 민주주의 사회가 도래하였다고 하지만, 그 공간 속에서 여성의 자리가 없었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등장하고 있다. 80년 광주가 38년이나 지난 지금에서도 우리는 온전히 '광주 정신'을 이룩한 적이 없음이 이번 폭로로 드러났다. 그런 의미에서 광주의 항쟁은 아직까지 온전히 완성된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