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보상공원의 서상돈 김광제 흉상
정만진
민족문제연구소 대구지부가 간행한 <대구 경북 친일 행적>과 대구경북역사연구회가 펴낸 <역사 속의 대구, 대구 사람들>에 따르면, 대구 출신 중에는 서병조, 권중식, 김낙헌, 김재환, 서병주, 서상훈, 신현구, 이병학, 이창우, 장직상, 정교원, 정재학, 정해붕, 진희규 등 자산가와 고위 관료 출신들이 중추원 참의(국회의원 정도)에 임명되었다. 이들 중 서병조는 서상돈의 차남이다. 아버지 서상돈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오르지 않았지만 아들 서병조는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아버지의 명성에 먹칠을 한 아들서병조는 아버지가 죽은 후 물려받은 재산으로 경상농공은행, 대동무역주식회사, 조양무진주식회사, 대구제사주식회사, 경북무진주식회사 등을 설립하거나 중역을 역임했던 대표적인 자본가'로서 일본인과 조선인 자본가로 구성된 대구상업회의소와 대구상공회의소의 특별회원이었으며, 일제의 지방행정기관의 자문기구였던 대구부 협의회 회원과 경북도회 의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또한 일제의 관변단체인 명치신궁봉찬회 조선지부 경북위원, 제국 재향군인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이 왜 이렇게 다를까? 서상돈 묘소와 고택을 찾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물론 사람은 모두가 개체이니 부자간이든 형제자매간이든 서로 정체성이 다르다. 하지만 달라도 너무나 다를 때에는 고개가 갸우뚱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것도 신의 섭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