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린이가 우리 집에 왔을 때의 모습이다.
김지영
가만히 있지 않았다. 김지영 시민기자는 인터넷을 뒤져 집에서 가까운 입양기관을 찾아갔다. 다음 날, 40km를 달려 진주에 도착했다. 입양 기관의 문이 잠겨 있었다. 전화했으나 받지 않았다. 그다음 날 다시 찾아갔으나 마찬가지였다. 여긴, 인연이 아니라 생각했다.
이번엔 부산으로 갔다. 인터넷에서 찾아낸 입양기관이 거기 있었다. 약 140km를 운전해 목적지에 다다랐다. 헛걸음했던 기억이 있기에 떠나기 전, 전화로 상담 약속도 잡았다. 그리고 입양 가족을 신청했다.
김지영 시민기자는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입양자격이 까다로워서가 아니다. 모르는 게 있었다. 아니, 잘못 알고 있는 거였다. 입양하면, 아이를 고르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쇼핑하듯 아이를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주어지고 인연이 닿아야 한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입양은 '뚝딱' 되는 것도 아니었다. 입양 가족이 되려면, 준비해야 할 서류가 꽤 됐다. 건강검진까지 받아야 했다. 입양기관에서 그가 사는 집을 찾아오기도 했다. 어떻게 사는지 살림살이를 보고, 이것저것 캐물었다. 심사가 끝난 뒤에는 연락이 오길 하염없이 기다렸다.
김지영 시민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입양 가족을 신청한 지 3개월 만이 어느 날이었다. 입양기관의 "소장님"이었다. 소개할 아이가 있다고 했다. 딸은 입양하겠다는 신청자가 많아 1년을 기다릴 수도 있다고 했는데, 뜻밖이었다.
미혼모 시설에서 태어난 아이라고 했다. 생모는 스물일곱이라고 했다. 처음엔 직접 키울 생각이었지만 산달이 가까워질 무렵, 입양을 보내기로 마음을 바꾸었다고 했다.
통화가 길어졌다. "소장님"은 갑작스레 전화가 이유를 꺼냈다.
생모가 아이의 입양을 결정하면서 곧바로 양부모가 정해졌다고 했다. 한 목사님의 가정이었단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최근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 달 미만의 영아입양은 관행상 '인우 보증'(친구나 친척, 이웃 등 가까운 사람이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을 해야 친자등록이 가능한데, 한 달 안에 입양 가정을 정해야 하는 조건이 붙는다고 했다. 이게 얼마 남지 않았다며, "소장님"은 김지영 시민기자에게 입양 의사를 물었단다.
그는 거절할 수 없었다. '좋다, 싫다'라고 말할 게 아니라고 판단했다. 아이는 주어지는 거고, 인연이 닿아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지금이 그럴 때였다. 일주일 뒤, 그는 아내, 아들과 함께 부산으로 달려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입양하기로 했던 목사님 가정이 미국에 잠시 나가 있는 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거였다. 이런 상황을 그는 두 번의 '우연'으로 표현했다. 우연히 반복되면 인연이 된다. 그는 이렇게 운명같이 딸을 얻게 됐다.
배 아파 낳는 거나, 가슴 아파 낳는 거나 똑같았다. 신생아를 맡을 준비로 김지영 시민기자의 가족은 바빠졌다. 딸을 만나기 일주일 전이었다. 당장 젖병부터 사야 했고, 이것저것 살 아이 용품도 많았다. 하루는 시내 큰 마트에 다녀왔다. 볕은 좋은 날엔 천 기저귀를 빨아 말렸다. 9년 전이 아들 출산을 앞두고도 이랬다.
마음도 되살아났다. 아내가 첫 아이를 배고 출산하기까지 느꼈던 설렘과 두려움이 그대로 온몸을 감쌌다. 한 생명을 얻는 과정에서 꿈틀거리는 감정은 '벅차다'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이랬던 가슴이 고장 났다. 아이를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들뜬 마음에 떠나기 전, 김지영 시민기자의 가족은 목욕했다. 긴장한 가족의 숨이 새어 나와서일까. 부산으로 향하는 차 안은 뜨겁고 차가운 공기가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요람에 누워 있는 아이의 얼굴을 처음 봤다.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낯선 감정이 차올라 당황스러웠다.
김지영 시민기자는 어리둥절했단다. 이런 감정이 솟아날 거라곤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첫째 아들을 낳았을 땐 가슴 속에서 뭔가 북받쳐 올라 눈물이 흘렀다. 지금은 달랐다. 눈앞에 딸이 있는데, 미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아내는 딸아이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졌다. 눈물을 흘렸다. 아들도 신기하지 천진난만하게 동생을 바라봤다. 나는 낯설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질감에 사로잡혔다. 이런 감정이 날아간 건, 집에 돌아와서다.아이 우유 먹이고, 드림 시키고, 똥 기저귀 갈고, 엉덩이 씻기고... 이런 일을 하다 보니 하루 만에 낯선 감정이 날아갔다. 그리고 미안함 감정이 솟아올랐다. 딸애한테 부끄러웠다. 하지만 한가롭게 감정이나 잡고 있을 수 없었다. 육아 전쟁이 시작됐고, 곧 아이와 사랑에 빠지게 됐다."'딸바보'가 된 소린이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