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 한다'... 뜨거운 이 사진 한 장

[박도 기자의 사진 근현대사 39] 한국전쟁의 전상자

등록 2018.05.27 17:21수정 2018.05.27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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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국군의 인명 피해는 전사 13만7899명, 부상 45만742명, 실종 2만4495명, 포로 8343명 등 62만1479명이다(2006년도 국방백서 통계 결과). 수많은 인명 피해 탓인지 내 어린 시절에는 전장에서 전사한 국군의 유골이 하얀 상자에 담겨 돌아올 때면 우리 학동들은 역전 광장에 마련된 유해 봉환식에 참석해 눈물로 맞이하는 가족들의 아픈 표정들을 지켜봤다.

또 마을에는 전쟁 중에 부상당한 예비역 상이군인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들은 의족(義足)이나 의수(義手)를 낀 채 생업에 종사했다. 그 시절에는 국가의 원호가 부실한 터라 예비역 상이군인 가운데는 생계를 위해 열차에서 연필을 팔거나 열차 승객 좌석을 미리 잡고 그 자리를 일반 승객들에게 팔면서 호구지책을 삼는 이들도 많았다. 이번 [박도 기자의 사진 근현대사] 39회에서는 한국전쟁 때 부상자 사진들을 모아봤다. - 기자 말

1950. 7. 29. 국군 병사가 뜨거운 전우애로 부상병을 업어 후송시키고 있다. ⓒ NARA


1950. 8. 23. 국군 위생병들이 부상병을 들것에 실어 후송시키고 있다. ⓒ NARA


1950. 10. 옹진전투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국군 특무상사가 목발을 짚은 채 침통한 표정으로 철조망 앞에 서 있다. ⓒ NARA


1951. 2. 추위에 떨고 있는 중국군 부상포로. ⓒ NARA


1952. 부산, 국군병원에 입원 중인 부상병들이 경남여중고생들의 위문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 NARA


부산, 국군병원에서 퇴원하는 상이군인에게 한 어린이가 꽃다발을 선물하고 있다. ⓒ NARA


1952. 10. 8. 철원, 백마고지 전투에서 부상당한 국군 ⓒ NARA


1953. 8. 16. 부상당한 국군 포로가 귀환 즉시 앰뷸런스로 후송되고 있다. ⓒ NARA


1953. 8. 17. 판문점, 부상 미군 포로가 정전협정 조인으로 남쪽으로 돌아오고 있다. ⓒ NARA


#한국전쟁 #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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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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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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