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 경내.
김종성
군수와 서장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저 머리는 빡빡 깎고 작달만한 것이"라며 분을 참지 못했다. "머리를 빡빡 깎고"라고 했다. 절에서는 당연한 풍경인데, 그렇게 말한 것을 보니, 너무 화가 나서 절인지 어딘지 분간이 안 된 모양이다.
그 순간에 분간이 안 된 것은 군수 일행뿐 아니었다. 외모 비하 때문인지 한용운도 '분간'이 안 됐다. 자기가 수행자라는 사실을 깜빡 잊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처럼 기도의 대상인 '님'을 잠시 어딘가에 보내놓고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용운은 불의를 보면 참을 필요가 없는, 센 주먹의 소유자였다. 혼자서 순사들과 붙었다. 결과는 한용운의 완승이었다. 아주 손쉽게 순사 여럿을 때려눕혔다. 순사들은 스님이 그렇게 싸움을 잘할 줄 몰랐을 것이다. 방심이 패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군수 일행은 대접도 못 받고 그냥 돌아갔다. 종교 권력의 힘은 일제강점기 하에서도 무서웠다. 이 사건으로 불이익을 입은 쪽은 군수와 서장이었다. 이들은 물의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다른 지역으로 가라는 전보 발령을 받았다.
한용운의 기질은 나이 들어도 바뀌지 않았다. 60이 넘었을 때다. 해방 몇 년 전이었다. 누군가의 생일 파티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 중추원 참의가 동석했다. 지금으로 치면 국회의원 정도의 지위였다. 정씨 성을 가진 그는 친일파였다. 파티 자리에서 그 친일파는 일제를 찬미하는 발언을 내뱉었다. 술이 들어가 시심이 살짝 발동했을 수도 있는 한용운은 그 발언에 심기가 뒤틀렸다. 시심이 가셨을 것이다.
한용운은 정씨의 발언을 끊었다. "야! 이 정가야, 내가 한용운이다. 이리 와서 얘기 좀 하자." 술에 좀 취한 상태였다. 한용운의 입은 거칠어졌다. "야, 이놈아. 글줄이나 읽은 놈이 더구나 양반집 새끼가 고작 지껄이는 게 그따위야?" 그 다음 상황을 임중빈의 <만해 한용운>은 이렇게 묘사한다.
"팔을 불끈 걷어붙인 만해는 앞뒤 가릴 것 없이 그 친구의 면상을 후려갈겨 정 모의 얼굴에는 피가 흘렀다. 다시 멱살을 휘어잡고는 좌중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오늘 이 자식을 없애 버립시다. 가만 놔두면 딴 데 가서 또 나불댈 거란 말이오."
한번은 한용운의 집에 손님이 찾아왔다. 손님은 돈 보따리를 내밀었다. 총독부가 보낸 돈이었다. 한용운을 회유할 목적이었던 것이다. 한용운은 보따리를 들어 손님 얼굴을 후려쳤다. "젊은 놈이 이따위 시시한 심부름이나 하고 다녀? 당장 나가!"라고 고함쳤다.
또 한번은 일제가 세운 조선식산은행의 직원이 찾아왔다. 지금의 서울시 성북동 일대 토지 20만 평을 무상으로 줄 테니 도장만 찍으라고 권유했다. 한용운은 "난 그런 건 모른다네"라며 등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