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일 오후 경남 창원시 진해 해군 교육사령부 연병장에서 열린 무술년 첫 '해군병 646기 및 해경 386기 입영식'에서 입영장병들이 거수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입대하는 날이 되었다. 부대에 도착하자 다른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열심히 사진 찍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굴하지 않고 기본 사진만 찍었다. 그리고 식이 열리는 강당에 첫째와 들어서는데 실내가 이미 꽉 차 있다. 앉을 자리만 없는 것이 아니라 서 있을 자리도 많지 않았다. 군복 입은 군인에게 물었다. 입소식이 끝나려면 얼마나 걸리냐고. 한 시간은 걸린단다.
초등학생 막내와 이 답답한 공간에서 한 시간을 서서 어찌 보내나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막내를 데리고 창 쪽으로 들어갔다. 벽에 기대기라도 해야 막내가 짜증을 덜 낼 거 같았다. 남편과 첫째가 강당 맨 뒤에 같이 서 있고 나와 막내가 창가에 있었다.
그렇게 15분 정도 진행이 되었을까? 갑자기 사회자가 훈련병들만 운동장으로 나가라는 것이 아닌가? 이제 가족과 떨어지는 거라고 한다. 이게 뭔 소리인가? 한 시간이 아니라 벌써 끝이 나다니. 이제 첫째와 헤어지는 것이란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아이의 손이라도 잡아야 할 거 같았다.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막내와 첫째에게 갔다. 아이의 손을 잡고 "잘 가" 인사말을 하며 첫째를 안았다. 이제 이 아이를 언제 다시 안을 수 있을지 모른다. 어떻게 자식을 아는 이 하나 없는 이 휴전선에 두고 발길을 돌려 내가 집으로 가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왈칵 나왔다. 내 눈물과 울음 섞인 목소리를 들은 막내가 눈이 동그래지며 놀란다.
"엄마 울어?" 당황해하는 막내를 안심시키기보다는 첫째를 눈에 담아야 했다. 그리고 첫째의 손의 촉감을 기억해야 한다. 첫째의 눈가도 젖어간다. 이 순간 첫째를 울리고 싶진 않다. 처음 보는 동기들 앞에서 창피해할 거 같았다. 첫째가 더 울까 걱정이 되어서 눈물을 참기로 했다. 참은 울음을 속으로 먹었다. 그리고 뭘 또 해야 하지. 그래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 한다.
"사랑해.""저도요."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냈다. 강당 출입구로 첫째가 빨려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모자를 쓴 청년들만 밖으로 나간다. 우린 뭘 하는 걸까? 가족은 나가지 말고 대기를 하란다. 막내는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본다. 엄마가 우니까 걱정이 되나 보다. 형이 군대에 간다는 게 형이 쓰던 방을 자기가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외에는 다른 의미가 없는 아이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힘이 빠져 서 있을 기운이 없다. 훈련병이 나가고 나니 좌석이 군데군데 옥수수 알 빠지듯 비었다. 빈자리에 쓰러지듯이 앉았다. 머리가 멍하다.
5주 뒤 수료식 때 꼭 보자마이크를 든 장교는 뭔가 설명을 한다. 훈련병에게 음성 메시지를 전해 주고 싶은 분을 선착순으로 30명만 나오란다. 어쩔까 하고 고민을 하는데 서너 명의 여성이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나도 앞에 나가니 순식간에 내 앞에 사람이 20명은 되었다. 줄을 선 사람은 엄마나 애인 또는 누나다.
남자는 한 명도 없다. 무슨 말을 할지 머리에 생각을 해 두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서 장교 핸드폰의 빨간 버튼이 코앞에서 내가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 엄마야!" 말문이 막힌다. 준비한 말이 뭐였더라.
"○○아, 사랑한다. 몸과 마음 건강히 훈련 잘 마치고 수료식 날 보자. 파이팅!" 자리에 돌아오니 숨을 돌리니 남편과 막내는 핸드폰을 보느라 정신이 없다. 심지어 막내는 "엄마, 어디 갔다 왔어?"하고 묻는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참 마음이 편해서 좋겠다. 가족들도 운동장으로 나오라고 한다.
우리 아들이 어디 있나 찾는데 쉽지가 않다. 미세먼지 때문에 훈련병 전원이 마스크을 써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리고 있으니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막내가 먼저 형이 저기 있다고 한다. 막내가 말한 곳에 우리 아이가 서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긴 팔 검은색 상의를 입고 있다. 큰애는 반소매 검정 상의를 입고 왔다. 그러니까 우리 아이가 아니다.
다시 첫째를 찾기 시작했다. "엄마, 형 저기 있어." 이번엔 정말 우리 아들이 맞다. 그런데 어쩜 아까 그 훈련병과 첫째가 체형부터 머리 이마선까지 저렇게 비슷할 수가 있을까? 정말 신기한 일이다. 입영식 중 부대 소속 군인으로 전투 중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묵념이 있었다. 이 부대에서만 만 명이 넘는 군인이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다는데 그분들의 엄마는 마음이 어땠을까?
식이 다 끝나고 훈련병이 연병장을 돌아서 빠져나간다. 아들이 찾기 쉽게 손을 들었다. 아들도 손을 흔든다. '잘 가. 잘 살아 있어. 5주 뒤 만날 때까지.' 엄마가 휴전선 이 변방에 너를 두고 어떻게 집에 갈지 모르겠다. 이 오지에 널 두고 엄마가 집에서 편히 누울까? 내 눈에 여전히 아이인 널 보초 세우고 내가 어찌 집에 가서 잠을 잘 수 있을까?
힘없이 부대를 나서려는데 남편이 PX에 들렀다 가자 한다. 무슨 소리냐 물으니 남편은 들려도 된다는 안내를 받았단다. 난 듣지도 못했는데 남편은 그 말을 어떻게 들었을까? PX에 들어가서 과자 가격을 본 막내가 놀란다. 어떻게 과자 가격이 이렇게 쌀 수가 있냐는 거다.
신이 난 막내를 본 아저씨가 "그렇게 좋으면 너도 입대해" 하고 말한다. 막내는 '앵?'하는 얼굴이다. 막내는 수료식 때 또 올 거란다. 수료식 때 안 따라온다고 할까 걱정했는데 이유가 뭐든 따라온다니 다행이다. 손수건 준비해 오길 잘 했다 싶다. 첫째가 몸과 마음 건강하게 훈련 잘 받고 수료식 땐 웃으며 만나길 기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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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갑작스런 이별... 언제 다시 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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