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네리페에서" 2017년 말,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인 테네리페(Teneiffe)에서.
송두율
- 독일 교민들 현황도 궁금합니다."1960~1970년대 미국 이민자는 주로 한국의 중산층 출신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독일은 광부와 간호사로부터 출발했습니다. 현재는 유학생들도 많고 기업체 주재원들도 있지만,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들은 교민이 아니지요. 지금은 교민 2세들이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 독일 교민들의 민주화 운동을 소개해 주시지요."1974년에 유신을 반대할 때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소수였습니다. 민주사회건설협의회를 1974년에 55명으로 시작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고국의 민주화를 위해 운동을 한 겁니다. 그 이후에 통일운동도 진행했습니다. 우리 세대는 분단과 독재 속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참여한다고 해서 당장 변화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고국의 참담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지요."
- 주로 누가 주축이 되었나요? "처음에는 유학생들이 중심이 되었지요. 귀국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서 유학생들이 민주화 운동에 선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간호사들과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쉽게 동참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 뒤 간호사들이 영주권을 획득하고 그들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광산에서 일했던 일부가 민주화운동에 동참했습니다. 영주 자격을 얻은 뒤 뭉쳐서 운동을 한 겁니다. 지금도 운동하는 사람들이 소수지만 다음 세대에는 사라질 것 같습니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무래도 교민 2세들은 한국 문제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지요."
- 독일교민들의 민주화운동이 다른 지역과 차별성이 있는지요?"일본, 미국과는 다른 성격을 띠었지요. 재일동포들은 일본사회에서 민족적 설움을 느꼈기에 통일 지향적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민 생활이 안정된 교민들이 운동에 참여했지요. 독일은 가장 어려운 조건이었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운동을 했습니다."
"민주화운동 하면서 생명의 위협 느낄 정도로 압박 받아"- 민주화운동을 하시면서 어려움도 겪으셨겠지요?"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압박을 받았습니다. 밤길에 나를 테러하고 달아나면 그만이었거든요. 내가 미국이나 일본을 방문해서 현지 인사들과 연대하여 반독재민주화행사를 해야 하다보니 집을 자주 비웠습니다. 그러면 제가 집에 있는지 현지에 갔는지 확인하는 전화를 걸어오곤 했습니다. 혼자 있는 아내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그들이 귀국해서 교수도 되고 하더군요."
- 학자 본연의 일에 전념하는 데에도 힘드셨겠군요."아무래도 민주화와 통일운동을 하다보니 학문에 전념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가령 남북학술회의와 같은 큰 행사를 준비하려면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듭니다. 그 시간에 학자로서 더 많은 연구를 했을 거라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그런데 '조중동'과 일부 검사는 나를 '이북에서 돈받아서 잘 사는 가짜교수'로 매도하더군요."
- 1980년에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을 접하셨을 때 독일 교민사회의 상황을 알려 주시지요."당시 <제2 독일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현장 상황을 보았습니다. 의식있는 교민들과 유학생들이 서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등지에서 항의 단식에 들어갔습니다. 거리 시위를 하고 현지 소식을 독일 언론에 널리 알렸습니다. 나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한국 상황을 브리핑하는 일을 시작으로 광주의 진실을 알렸습니다. 전두환 군부를 지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독일 사회에 호소했습니다. 그런데도 1981년 9월 말에 독일 바덴바덴 시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는 서울을 1988년 하계올림픽대회 개최지로 결정했습니다. 올림픽 경기가 정치 도구로 전락한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올림픽을 보이콧하는 것보다는 군부독재를 빨리 종식시키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현실을 알리는 글을 쓰고 강연을 하는 데 더 열심히 나섰습니다."
- 독일교민들이 광주민주화운동 행사를 해마다 연다고 들었습니다."'광주를 잊지 말자'면서 운동을 지속적으로 했습니다. 점차 유럽의 여러 단체들이 한데 모여서 행사를 했지요. 광주민주화운동 기념행사가 올해로 29년째인데 해외에서 국내와 연계하여 이렇게 오래 광주 관련 행사를 한 사례가 없습니다. 올해 행사엔 김세균 명예교수(서울대학교 정치학과)도 베를린에 와서 강연을 합니다. 특히 정범구 대사(주 독일 대한민국 대사관)가 독일 유학 시절에 당시 광주 항쟁 행사에도 참가를 하였는데 올해 행사에서는 그가 인사말을 한다고 합니다. (주 독일 대한민국 대사가 광주민주화운동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민주화된 덕분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88올림픽 보이콧보다는 군부독재 빨리 종식시키는 게 낫다고 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