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생부(殺生簿)>는 조선시대 절대 권력자로 악명을 떨쳤던 한명회(韓明澮)와 맞서 싸우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뤘다.
김종훈 작가 제공
시기에 따라 변해가는 무협만화의 색깔대중문화 컨텐츠는 해당 시기를 반영한다. 때문에 어떤 것보다도 변화의 폭이 크고 빠르다. 무협 만화 역시 자연스레 변화를 하게 된다. 1990년 들어 만화 시장은 대본소 만화에서 슬슬 잡지 중심으로 개편되기 시작한다. 특정 장소에 가서 보는 불편함 없이 여러 작가의 작품이 연재되는 만화잡지를 사서 안방에서 편하게 보는 것이다.
주간 <아이큐 점프>와 <소년 챔프>가 대표적이다. 두 잡지는 이후 <영점프>, <영챔프> 등 또 다른 잡지까지 이어내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참동안 경쟁 체제에 들어간다.
물론 이전에도 만화 잡지는 있었다. <새소년>, <보물섬>, <어깨동무>, <학생과학>, <소년중앙>, <소년경향>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보물섬 정도를 빼고는 대부분 만화가 주요 콘텐츠로 섞인 종합 학생잡지의 성격이 컸다. 거기에 월간지였다. 주간 전문 만화 잡지와는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만화잡지를 중심으로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런 가운데 무협 역시 여러 가지 변화가 시도됐다. 특히 <아이큐 점프>를 통해 연재되던 '소림깡돌이'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스토리로 눈길을 끌었다. 권선징악, 기연 등 기존 무협의 스타일을 따라가면서도 우주전함 등이 등장하는 시대, 공간 파괴적 요소가 가미되면서 이른바 퓨전무협의 장을 열게 된다.
물론 파격적이어도 너무 파격적이었던지라 연재 당시 팬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갈렸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 같으면 모르겠지만 여전히 정통무협이 대세를 이루던 당시 난데없이 소림사 하늘에 우주선이 들이닥치는 광경은 독자들 입장에서 쉽게 적응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무협 작품이 정해진 공간과 틀을 벗어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긍정적인 시도였다는 평가다.
만화잡지 시장의 인기는 서점과 도서대여점에도 영향을 끼쳤다. <아이큐 점프>, <소년 챔프> 등은 인기 있는 연재물을 단행본으로 속속 제작했고 이는 독자들이 서점에서 직접 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주머니 사정이 부족한 독자들은 도서대여점을 통해 빌려보면 됐다.
잡지에서 모두 본 내용이기는했지만 아무래도 여러 작품이 섞인 잡지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해당 작품을 별도의 책으로 보거나 가지기를 원하는 독자들도 많았던지라 반응은 좋았다. 연재물은 아니지만 서점, 대여점을 노리고 만들어지는 별개의 작품도 있었다.
무협콘텐츠도 발전을 거듭하며 <용비불패>, <협객 붉은매>, <열혈강호> 등 지금까지 회자되는 명작들이 서점, 대여점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기존 정통무협을 그대로 따라한 작품을 비롯 판타지 적인 요소가 가미된 퓨전 무협 등 소재도 다양했다. 무엇보다 그림체 등에서 좀 더 완성도가 높았던지라 대본소 만화를 선호하지 않는 독자층까지도 더불어 끌어들였다는 분석이다. 그야말로 무협속 상상의 세계는 끝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