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책 표지 (2016년 출간)
현대문학
통로소설 작품과 작가의 상관성은 어느 정도일까. 아니,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작가를 아는 일은 그 작가가 쓴 문학 작품들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일일까. 필요하다면 얼마 만큼일까.
정답이야 사람마다 제각각일 테다. 그리고 그 정답은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다. 작품을 읽은 뒤 작가가 궁금해져서 작가에 대해 알아보다 보니 그의 작품(들)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작가를 알게 되어도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전혀 달라지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가 본인에 대해 쓴 책은 한편으로는 호기(好期)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위험한 행위이다. 작가의 자서전은 분명히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에게 통로(path)를 열어주지만, 그 통로는 꽃길일수도 험지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독자 스스로 통로를 아예 폐쇄할 수도 있다.
"한없이 개인적이고 피지컬한" 자기소개이 소제목은 이 책 중에서 제7장의 제목을 차용한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불현듯 느낀 전반적인 정서를 표현하라면, 정말 이 말이 딱 맞을 듯싶다. "한없이 개인적이고 피지컬한" 술회.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없이 개인적인" 자신만의 사연을 꾸역꾸역 진득하게 한 챕터씩 늘어놓는다. 하루키가 이토록 철저하리만큼 자기 속내를 "피지컬"하게 펼쳐놓은 경우가 예전에 또 있었을까 새삼스러울 정도다.
이 책은 본질적으로 자서전이지만 내용물과 그 순서에 있어서 제법 체계가 있다. 소설가라 불리는 인간들의 전형성, 왜 소설을 쓰기 시작하게 됐는지, 문학상들에 관한 소견, 본인의 작품들이 과연 걸작(originality)이 될 수 있을지 여부, 소설을 어떤 방식으로 구상하고 써 내려가는지, 그 작법들은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를 위해 본인이 어떤 훈련들을 하고 나아가 학교에서는 어떤 교육이 필요할지, 외국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경원(敬遠)했던 이를 추모하는 짧은 글 등등, 마치 소설처럼 서사를 따라 술술 읽는 기분이다.
그리고 끝내 이런 생각을 한다. '아! 이 자는 좋은 사람, 아니 진실한 사람이구나.' 한 장씩 꾸역꾸역 진득하게 이어지는 진솔한 고백들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추상(抽象)을 하나의 엄연한 물리적인 형체로 만들어 준다고나 할까.(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체를 한번 흉내내봤다.)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는 글쓰기